"내 재산정보 샜나" 불안감 확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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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화곡동의 한 부동산중개업소에 부동산 계약서 작성 프로그램인 ‘탱크21’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부동산 계약자들 사이에 탱크21 해킹에 따른 개인정보 유출 불안감이 확산되고 있다. [최현주 기자]

한국공인중개사협회가 2004년부터 부동산 계약서 작성 프로그램인 탱크21을 통해 보관한 계약서가 동의 없이 수집된 개인정보로 드러났다. 협회의 개인정보 보호가 부실해 이미 해킹 위협에 노출돼 있었다는 정부 조사 결과도 나왔다. 현행 법령에 따르면 주민번호 같은 개인정보가 들어 있는 문서·파일·데이터베이스(DB)는 형태에 상관없이 개인정보 보호 대상이다. 이를 취급하는 개인이나 법인·기관은 개인정보 보호 의무를 지게 된다. 부동산중개업도 포함된다. 2012년 기준으로 개인정보를 다루는 사람과 사업장은 전국적으로 350만 곳으로 추산된다.

 이들은 개인정보를 제3자에게 제공할 경우 동의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협회는 아무런 동의 절차 없이 개인정보가 잔뜩 들어가 있는 부동산 계약서를 DB화해 보관해 왔다. 탱크21의 표준 계약서를 보면 어느 곳에도 개인정보 수집 동의 항목이 없다. 지난해 10월 아파트 매매계약을 한 박모(48·서울 진관동)씨는 “계약서상의 내 개인정보가 중개사협회에 보관될 줄은 생각도 못했다”고 말했다. 탱크21에 계약서가 보관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부동산중개업소도 드물다. 서울 도화동 중개업소의 공인중개사는 “편리해서 탱크21을 사용했을 뿐 계약서 보관 기능이 있는지 몰랐다”며 “계약서를 작성할 때 매도·매수자에게 개인정보가 협회에 남는다고 일러주지 않았다”고 전했다. 안전행정부 관계자는 “동의 절차 없이 수집된 개인정보는 명백히 불법”이라고 말했다.

 협회의 취약한 개인정보 보호는 지난달 실시된 안행부 점검에서 확인됐다. 안행부 관계자는 17일 “지난달 온라인 점검과 현장 점검을 통해 탱크21의 개인정보 보호 문제점을 발견하고 조치를 강구 중”이라고 밝혔다. 외부접근 기록 관리, 개인정보 암호화 등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안행부는 지난해 말 대한약사회 산하 민간 재단법인인 약학정보원의 개인정보 유출 사건이 발생한 뒤 중개사협회에 대한 점검에 들어갔다. 탱크21을 통한 중개사협회의 중개업소 계약서 통합관리가 약학정보원이 약국들에 설치한 전산망으로 의료정보를 수집하는 것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안행부 관계자는 “중개사협회의 개인정보 관리가 제대로 이뤄졌다면 해킹이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한 해 수백만 명의 매도·매수인 개인정보가 담긴 부동산 계약서를 다루는 협회에 대한 점검이 뒤늦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안행부는 유출 사고, 신고가 생길 경우에 한해 100여 곳을 대상으로 개인정보 관리실태 점검을 하고 있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거래 당사자도, 중개업소도 아닌 제3자인 협회가 계약서를 보관해도 되는지를 포함해 이번에 확실하게 법적으로 정리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편 부동산 계약서의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서울 상계동에 사는 이모(38)씨는 “카드 정보가 털린 지 얼마나 됐다고 이번엔 재산목록까지 유출될 수 있느냐”고 말했다. 경기도 일산신도시에 사는 김모(35)씨는 “다음주에 집 계약을 해야 하는데 겁이 나서 계약서를 쓰겠느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부동산중개업소의 공인중개사들도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서울 동작동의 A공인은 17일 오전에만 10통이 넘는 항의 전화를 받았다. A공인 관계자는 “믿고 계약서를 썼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는 항의가 많았다”며 “우리도 피해자인데 마치 중개업소들이 일부러 개인정보를 흘린 것 같아 답답하다”고 하소연했다.

일부 부동산중개업소는 ‘탱크21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안내문을 붙이기도 했다. 서울 화곡동 B공인은 “고객들이 탱크21을 불안해하는 것 같아 다른 프로그램을 쓴다는 걸 알리려 했다”고 말했다. 모처럼 거래가 늘고 있는 주택시장에 중개사협회 해킹이 악재가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나온다. 서울 잠실동 잠실1번지 공인 김찬경 사장은 “사소한 일로 계약이 무산되기도 하는데 자칫 불똥이 튀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안장원·최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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