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의 외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사진으로 본 그는 앳되고, 약간 장발이고, 사교적인 것 같다. 수다를 떨며 눈을 부릅뜨고, 두 팔을 휘젓는, 그런 광신도의 모습은 아니다. 우리 국회의원이 무슨 이야기를 할 때도, 귀를 기울이고 듣는 시늉을 하고 있다. 옆에서 누가 그의 팔목을 잡아끌지도 않는다.
이런「제스처」들은 우리 식으로 말하면 여유가 있어 보인다. 관료적이고, 조직적이며, 숨막힐 듯이 긴장되어있는 것 같은 그들 사회의 일상「매너」로는 좀체로 찾아보기 힘든 모습이다.
지난 10월 동경 IPU총회 때의 일이다.
필경 김정일에게나 가능한 일일 것 같다. 그것은 김일성의 아들이기 때문에 허용되는 예외이며, 또 김일성의 후계자다운 지위 때문에 갖는 여유일 것이다.
김일성의 족벌은 별로 알려진 것이 없다. 도무지 비밀 아닌 것이 없는 폐쇄사회에서 김일성자신은 고사하고 그의 아들에 관한 객관적인 자료도 찾아 볼 수 없다.
김정일은 김일성의 전처 김정숙의 소생이다. 전처는 1949년 산욕열로 아기와 함께 죽었다. 김정일은 1939년생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일설에는 그의 나이를 40대 초인으로 어림하는 주장도 있다. 짐작으로 30대 후반의 연배쯤 되는 것 같다.
김정숙은 또 하나의 아들을 남겨놓았다고 한다. 정일의 형이다.
그러나 이 아들은 무슨 연고인지 익사했다고 알려져 있다.
김정일은 동난 중엔 중공길림에가 있었다고 한다. 52년에 귀국, 평양에서 중간과정의 교육을 받고 김일성대학에서 수학했다. 그후에 소련에 유학, 무엇을 전공했는지는 알 수 없다.
김정일은「스포츠」를 즐기며, 성격도 활발한 편이고, 기계를 만질 줄 안다고 한다. 비행기조종도 곧잘 할 줄 아는 모양이다.
하지만 김정일에겐 불투명한 그의 과거보다는 현재가 더 중요하다. 그는 작년 11월 당비서로 승격, 막후에서 무대로 나섰다. 당비서는 정치적인 실권이 있는 실력자이기도 하다. 그의 주변엔 군의 실권자와 당의 조직을 맡은 사람과 행정을 맡은 사람들이 둘러싸고 있다. 김일성의「바통」을 이어받을 묵시적인 지위에 있는 것이다.
공산사회에서 권력이 세습으로 물려지는 예는 역사상 없다. 그러나 북한의 김일성은 그 역사의 예외조차 만들려 하고 있는 것 같다. 비록 그것이 능력주의에 의한 것이라고 변명해도, 세계의 공산사회는 그것을 믿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야말로『북한 적인 공산주의』의 산물이랄까. 북한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은 이면을 벗기고 보면 희극산인 것들이 많다. 웃어야 할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