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회담준비와 의전|박 대통령과 두 차례 회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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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리틀 에인절즈 공연 감상>
「포드」미대통령의 방한을 4일 앞두고 체한 일정이 거의 짜여졌다.
「포드」대통령은 1박2일의 짧은 일정 속에서 도착당일과 이한 직전에 박 대통령과 2차례의 정상회담을 가질 예정.
「포드」대통령은 22일 상오 10시께 김포공항에 도착, 박 대통령을 비롯한 3부 요인의 영접을 받고 숙소인 조선「호텔」에서 여장을 푼다.
잠시 휴식을 취한 후 고 육영수여사 묘소·국립묘지참배·서부전선미군부대시찰을 마치고 하오 3시께부터 청와대에서 박 대통령과 2시간20분으로 예정된 정상회담을 갖는다.
1차 정상회담 후 하오 6시30분부터 중앙청회의실「리셉션」에서 40분 동안 국내외인사와 만난 다음 다시 숙소에 돌아가 예복으로 갈아입고 하오 7시30분부터 시작되는 박 대통령주최 만찬에 참석,「리틀·에인절즈」등의 가무를 감상한다.
「포드」대통령은 김포에 도착 즉시 미국서 공수해온 전용승용차를 탈 계획이었으나 한국 측의 요청으로 김포에서 조선「호텔」까지는 박 대통령승용차를 동승하기로 했다.
미국역대 대통령의 외국나들이 중 전례가 거의 없던 일로 이는 한국 측 경호에 대한 신뢰표시로도 생각된다.
23일의 이한 시간은 미·소 정상회담에 관련, 확정되지 않았으나 박 대통령과 2차 정상회담 후 일본을 거쳐「블라디보스토크」로 떠날 예정이다.

<존슨 방한 못지 않은 축제>
「포드」대통령은 1백만명이상의 출영 시민들로부터 열렬한 환영을 받았던 지난 60년「아이젠하워」, 66년「존슨」대통령의 방한 때 못지 않은 성대한 환영을 받게 된다.
환영인파가 1백80만명으로 예상되고 영접소요예산이 약3억원에 이르고 있어 환영계획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아이젠하워」방한 때는 거리를 꽉 메운 환영인파 때문에 진행「코스」를 바꿔야했으며 인파 속의「아이젠하워」를 구출하기 위해「헬리콥터」까지 뜰 정도로 온통 축제분위기.
「존슨」때도 환영인파로 혼잡을 이루었는데 그래서 수행원들은 미국대통령의 외국 나들이 중 서울에서 가장 극진한 환영을 받았다는 뒷얘기들.
이에 비해 한국대통령이 미국에서 받은 환영은 대조적.
한국대통령으로 미국을 방문한 것은 이승만대통령이 한번, 박정희 대통령이 5번(최고회의의장 때 포함)이었는데 이례적인 대환영을 받았다는 65년 박 대통령의 방미 때 환영인파는13만명 정도였다.

<선물내용 밝혀지지 않아>
정상회담은 그 자체가 국가원수간의 우호·친목을 돈독히 하는데 상징적인 의가 있는 것이어서 회담 전에 선물을 교환하는 것이 상례다.
이번에 주고받을 선물내용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으나「존슨」방한 때는 한국 측에서 자개문갑·자수정「타이핀」·「커프스·버튼」을, 미 측에서 백동 백마상을 서로 주고받았다.
「포드」대통령이 방한기간 중 김영삼 신민당 총재 등 야당인사를「리셉션」이나 만찬자리이외에 별도로 만날 계획은 없으며 그것은「스테이트·비지트」의 의전상 있을 수 없는 일로 돼있다.
지난 54년「아이젠하워」대통령의 초청으로 방미한 이승만대통령이 정치일선에서 물러나 와병 중에 있는「트루먼」전 민주당대통령을 방문한다고 했을 때 미 국무성의 항의를 받기도 했다.
국무성 측은 당시 양유찬 주미대사에게『공화당정부 초청을 받아 왔는데 민주당사람을 만나는 것은 곤란하다』고 못마땅해했으나 이 얘기를 전해들은 이대통령은「트루먼」은 나의 친구야, 친구가 친구를 만나는 것도 의전상 문제가 되느냐』면서「트루먼」을 찾아갔다는 뒷얘기.
「스테이트·비지트」를 하는 경우 어쨌든 의전상 결례가 되는 일은 금기로 되어있고 그렇기 때문에 예정에 없이 야당인사를 만난다든가 내정간섭 적인 얘기는 피한다.

<호칭은『대통령각하』로>
정상회담은 보좌관들이 배석할 때보다는 단독으로 만나는 자리에서 중요한 얘기들이 오간다.
박-「케네디」,박-「존슨」, 박-「닉슨」때도 모두 별도의 단독회담을 갖고 내밀 적인 얘기를 나눴는데 단독회담엔 양쪽에서 통역만 배석한다.
최고회의의장 시절부터 박 대통령의 정상회담통역을 맡아본 이는 조상호 청와대의 전 수석비서관이었고 이번에도 그가 통역을 맡아볼 예정이라는 것.
정상회담에서의 호칭은『대통령 각하』(Mr.President)또는『각하』(Your Excellency).
이야기는 우선 신변에 관한 문제, 방문인상 등 부드러운 화제로부터 시작되는 것이 판례.
사범학교출신에 교사경력도 같았던 박-「존슨」은 자신들이 겪은 교육계경험에 대한 얘기를 많이 나누며 회담을 진행했고「존슨」은 때로 각 신문이 취급한 자신의 만화철을 뒤적이며 분위기를 부드럽게 했다는 것.
박-「포드」회담은「포드」의 첫 방한이자 처음으로 갖는 대면이어서 정중한 분위기가 될 것 같다는 얘기다.
회담 후 발표하는 공동성명을 위해 이미 한·미 양국은 초안을 만들어 놓았는데 회담당일 공동성명작성대표들이 회담내용을 보완, 성명문을 작성하게 된다.
그러나 공동성명은 국내사정, 제3국에 대한 영향을 고려해서 포괄적·의례적 표현으로 작성되기 때문에「허와 실」이 있게 마련.
예를 들면 한국군전투부대의 파월 문제가 주 의제가 됐던 65년 박-「존슨」회담의 공동성명 속엔 국군의 파월 논의 부분이 비치지도 않았던 것이다.<이제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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