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4)치주낭은 자각증상 없이 형성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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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어느 날 모 대학의 중견교수인 K박사의 내방을 받았다.
『도대체 얼마나 못났으면 치과 의사 앞에 가서 입이나 벌리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만나기 만하면 농담을 하던 친구다. 적어도 치아만큼은 자신이 있다고 으스대던 K박사다.
그러던 그가 입을 벌리고 치아가 잘못된 듯 싶으니 좀 보아달란다.
얼마 전부터 입에서 야릇한 냄새가 나기 시작하면서 찬물이나 더운물에 치아가 저리고 음식을 씹고 나면 어금니 쪽이 항상 펑하게 아프다는 것이다. 이따금 잇몸이 부어 올라 신경이 쓰인다면 서도 입을 벌린 K박사의 표정은 여전히 자신과 여유에 차 있다.
『얼마나 못났으면 입을 벌리고 있나?』놀려대면서도 면밀한 검사를 하고 있던 나는 측은한 생각이 들었다.
『K박사, 어금니를 뽑아야겠군.』
『이 사람아, 사람잡는 소리하지 말게. 누굴 놀리려는가?』
그러나 농담은 아니었다. K박사의 왼쪽 아래 어금니에는 깊은 치주낭이 형성되어 있어 치아를 보존하기에는 이미 때가 늦었던 것이다.
치주낭은 치아와 잇몸사이에 염증이 생겨서 벌어진 주머니모양의 공간을 말한다. 이 치주낭이 3mm이상 깊어지면 칫솔로 닦을 수 없게 되어 음식물의 찌꺼기와 각종 세균의 집합 장소가 된다.
치주낭 안에 들어간 음식물 찌꺼기와 세균은 치주 병의 원인이 되는 치 태를 만들어 내기도 하고 부패되어서 악취를 풍기기도 한다.
K박사가 고통을 겪은 구취는 바로 이 치주낭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치주낭은 K박사의 경우처럼 7mm나 깊어지도록 내버려두면 세균독소의 자극으로 잇몸 조직이 계속 파괴되므로 치아는 흔들리면서 빠지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일단 생긴 치주낭은 약으로 제거하기 힘들다. 반드시 외과적인 치료를 받아야 한다.
치주낭은 모르는 사이에 생긴다. 초기에는 자각증상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기적인 치아 검진만이 치주낭 예방의 지름길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겠다.
백승호<연세대 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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