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명이 참사한 또 하나의 화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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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서울의「뉴 남산 호텔」화재 후 20일도 채 못 되어 또 다시 대왕「코너」에서 불이나 88명이 참사하고 33명이 중상을 입는 불상사를 빚었다.「뉴 남산호텔」화재와 같은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사전예방조치를 철저히 할 것을 모두가 강조하였는데 어처구니없게도 똑같은 이유로, 그때보다도 더 처참한 화재가 또 일어난 것은 한마디로 우리사회전체의 부조리를 여지없이 드러낸 통탄할 세태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대왕「코너」는 지난 72년8월에도 불이나 6명이 불타 죽고 80여명이 부상했으며 3억 여 원의 재산피해를 내었었는데 이번에도 소방시설 미비로 이 같은 참사를 빚었으니 소방정책이 한심스럽기만 하다. 이 건물은 금년 들어서도 네 차례나 소방시설을 갖추도록 행정명령을 받았으나 전혀 이행의 흔적이 없다는 것이다. 2년 전 화재 때에는 1·2·3층이 전소되었었는데 소방시설이 불 비한 채로 어떻게 재사용 허가가 났으며 또 소방시설 안전점검도 필하지 않은 채 어떻게 버젓이 영업을 할 수 있었던 것인가.
최근에도 소방본부는 이 건물 안에 시설되어있는 화학성 가연성 내장재를 제거하도록 지시했으나 이행이 되지 않았다고 하니 우선 이처럼 번번한 행정명령을 내리고서도 집행이 강제되지 않을 수 있는 원인부터 밝혀야 하겠다.
고층「빌딩」에는 화재예방을 위하여 배연 시설이 되어 있어야하고,「스프링클러」시설이 되어 있어야 한다고 법령으로 정해져있는 데도 화재무방비상태를 연출했다면 이는 무엇보다도 감독당국의 직무유기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특히 많은 희생자를 낸「고고·클럽」과「호텔」에서는 출입구가 하나밖에 없었으며 출구 찾기가 미궁처럼 어려웠다고 하니 대중영업장소의 시설이 어찌 이 모양이었던지 통탄스럽다. 비상구에서도 많은 사람이 타죽었다고 하니 비상구의 설계부터가 잘못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가장 치명적인 것은 종업원들에 의한 인재라고 하겠다. 불이 나자 술값을 내지 않고 손님이 나가는 것을 막기 위하여 하나뿐인「클럽」출입문을 막아서서 그 장소에서 64여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어느 사이에 이 나라의 구석구석에까지 금권만능, 인명경시의 풍조가 이토록 미만 하였단 말인가. 아무리 돈이 중하기로서니 법을 어겨가면서까지 철야「고고·클럽」을 영업하고 화재가 났다는 데도 술값 받기 위하여 통로를 막아야 했단 말인가.
당연히 종업원들은 화재방지훈련조차 받은 일이 없었음이 드러났다. 이 건물에는 자체 소방시설로 송수 전, 포 말 소화기, 옥내소화전 등이 있었으나 소화기 2대가 사용되었을 뿐 나머지 소방시설은 손도 대지 못하였다니 안타깝다. 그 동안 대연 각「호텔」, 시민회관,「뉴·남산·호텔」대 화재를 당하여 소방훈련을 누차 시행하였어야 했건만 일을 당하자 구조대조차 사용하지 못했다고 한다. 각 업체는 방공훈련과 함께 자체소방훈련도 철저히 시행하여 앞으로는 인재에 의한 사망자의 증가만은 막아야 할 것이다.
금년에는 연탄 난이 빚은 부작용으로 유류·전기·「가스」등의 이용증가에 따라 화재발생률이 배로 늘어날 것이 예상된다. 전 방화시설의 일대 총 점검이 있어야 하겠다. 「호텔」이나 기타 대중이 출입하는 업소의 종업원들은 화재예방조치와 방화훈련도 철저하여야 할 것이다.
1백여 명의 사상자를 낸 대왕「코너」화재는 그 건물주나 관리자들이 스스로 72년도의 쓰라린 경험을 갖고서도 아직 각성의 도가 모자랐다는 증거이며, 또 1백61명의 사망자를 낸 대연 각「호텔」조차 남의 일로 흘려버린 당연한 응 보라 수 있다. 정부는 경찰서장이나 소방서장의 직위해제 등 소극적 방법의 강구에만 급급하지 말고 보다 근본적인 방화시설 점검작업을 펴주기 바란다. 고층「빌딩」전반에 걸친 소방시설의 엄격한 재점검과 함께 타락된 사회기풍을 일신할 수 있는 획기적인 단안이 또한 절실히 요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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