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chi] 맥 못 추는 남자 쇼트트랙 … 실력 탓인가 파벌 탓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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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빅토르 안은 쇼트트랙 남자 5000m 계주 준결승에서 러시아 대표팀의 마지막 주자로 나서 눈 깜짝할 새 선두로 치고 올라선 뒤 여유 있게 1위로 골인했다. 그는 1500m에서 동메달을 땄을 때보다 더 즐거워했다. 빅토르 안은 이번 대회에서 단체전 금메달을 가장 따고 싶어 한다. [소치 로이터=뉴시스]

쇼트트랙은 전통의 효자 종목이었다. 2010년 밴쿠버 겨울올림픽까지 금메달 19개를 수확했다. 여름올림픽 양궁의 역대 금메달 수와 같다. 하지만 소치 올림픽에서 금메달 소식은 아직 없다.

 파벌싸움 끝에 러시아로 귀화한 빅토르 안(29·한국명 안현수)이 남자 1500m에서 동메달을 딴 데 이어 13일 남자 계주 5000m에서 1위로 러시아를 결승으로 이끌면서, 대한빙상경기연맹에 대한 비난 목소리는 더 커지고 있다. 반면 위기의 한국 남자쇼트트랙은 계주 준결승에서 4바퀴를 남기고 이호석(28·고양시청)이 넘어져 예상밖 3위로 결승 진출에 실패했다. 네티즌들은 한국 선수들의 부진 을 빙상연맹의 파벌싸움 탓으로 돌리고 있다.

 성적 지상주의에 가려져 곪을 대로 곪은 쇼트트랙 파벌싸움은 2006년 세상에 공개됐다. 토리노 올림픽에서 남녀 대표팀은 한체대와 비(非)한체대파로 나뉘어 따로 훈련했다. 당시 안현수는 대회 전까지 여자팀과 훈련했고, 진선유(26·은퇴)와 변천사(27·은퇴)는 남자팀에서 훈련을 했다. 그해 4월 안현수의 아버지 안기원(57)씨는 아들이 대표팀 파벌싸움에 희생됐다며 공항에서 빙상연맹 부회장과 주먹다짐을 벌였다. 2010년 이정수(25·고양시청)와 곽윤기(25·서울시청)가 경기 중 서로 짜고 상대편을 밀어줬다는 ‘짬짜미 파문’까지 벌어졌다.

한국은 이호석(오른쪽)이 5000m 계주 준결승에서 넘어져 결승 진출에 실패했다. [소치=뉴시스]

 빙상연맹은 썩은 환부를 도려내지 않은 채 눈 가리고 아웅 식의 사과와 꼬리 자르기를 반복했다. 2010년 ‘짬짜미 파문’ 이후 빙상연맹은 “파벌은 사라졌다”고 주장하고 있다. 과연 그럴까.

 박승희(22·화성시청)의 스승인 조남규(30) 코치는 13일 “난 단국대 출신 비한체대 쪽이지만 중간 입장에서 봤을 때 연맹에만 잘못을 묻기 어렵다. 안현수의 러시아 귀화는 빙상연맹과 불화도 있었지만 부상 여파도 있었다”며 “세대교체가 되면서 파벌 문제는 많이 사라졌다. 젊은 지도자들 사이에서 공정하게 경쟁하자는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말했다.

 2010년 파벌 논란 당시 대한빙상경기연맹 공동조사위원회 조사위원이었던 정준희 문화체육관광부 사무관 역시 “과거 한체대파와 비한체대파는 지금 사분오열됐다. 지금은 파벌보다는 특정 지도자 중심의 춘추전국시대 같다” 고 말했다.

 하지만 익명을 요구한 A쇼트트랙 코치는 “파벌은 여전하다. 빙상연맹 B임원의 독재 속에 ‘제 식구 감싸기’는 계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1월 불거진 쇼트트랙 대표팀 코치의 성추행 사건이 대표적인 사례다. 2012년 한체대 코치였던 C코치가 여자 선수를 성추행했다는 의혹을 받았는데, C코치의 스승인 B임원이 무마하려는 정황도 제기됐다.

 빙상연맹은 C코치를 태릉선수촌에서 퇴촌시키고 상벌위원회를 열었다. 하지만 빙상계 원로들은 “연맹 집행부에 특정 인물이 제왕적인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며 “상벌위원회를 열어도 진상 규명은 힘들 것이다 ”고 개탄했다. A코치는 “B씨는 비한체대파까지 포섭해 독재자처럼 절대권력을 행사하고 있다”며 “능력과 상관없이 그에게 잘 보이면 미래가 보장된다. 반대로 한 번 밉보이면 선수 생활이 불가능해지는 경우까지 있다 ”고 안타까워했다.

박린·장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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