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김형경의 남자를 위하여

어머니 없이 아버지 되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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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김형경
소설가

사석에서 마주치는 중년 남자 중에는 자식에게 재산을 물려주지 않겠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아내와 함께 노후를 행복하게 보내기 위해 재산을 어떻게 운용할지 청사진도 그려놓았다. 자식이 맨손으로 시작하려면 힘들겠다고 거들면 자기도 빈주먹으로 시작했다고 말한다. “대학 공부까지 시켜줬으면 충분하지.” 어떤 이는 자식이 자기 재산을 탐내고 있을까 봐 걱정된다고 말한다. 그도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재산이고, 어차피 자식에게 물려줄 것 아니냐고 물으면 눈을 크게 뜬다. “내가 죽으면 재산은 아내한테 가야지.”

 아버지가 된 남자들이 아들에게 갖는 감정에는 어찌할 수 없는 경쟁심이 있다. 세계 신화에는 아들이 자라면 아버지의 권위와 재산을 빼앗을 거라는 신탁을 두려워하며 아들을 살해하는 아버지 이야기가 많다. 그럼에도 아들은 기어이 살아나서 아버지의 재산과 여자를 차지한다. 신화가 말해주듯 남자들의 무의식에는 아들이 자라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그것은 실은 자신이 늙고 힘없어지는 것에 대한 공포여서 아버지가 아들에게 오롯이 사랑만 주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그 위에 개인적인 요인 한 가지가 더해지면 자녀보다 아내에게 애착을 갖는 남자가 된다. 그것은 모성에 대한 결핍감이다. 어떤 이유로든 성장기에 안정적으로 사랑과 보살핌을 주는 어머니가 없었던 이들은 아버지 역할을 어려워한다. 내면에 결핍되어 있는 욕구를 아내에게서 보상받으려 하기 때문에 아내에게 의존, 집착하는 남편이 된다. 아내에게 이상화된 엄마 이미지를 투사해서 큰 권위를 부여하거나 지나친 애착 관계를 유지한다. 그들의 아내는 남편과 상호 의존 관계를 맺고 있어 “남자는 다 애야”라고 투덜거리면서도 남편을 돌보는 역할을 소중히 이행한다. 그런 부부는 자녀보다 배우자가 더 중요하다고 공공연하게 이야기한다.

 부부가 사랑하는 관계를 유지해야 자녀들이 심리적 안정감을 느낀다. 하지만 부부가 사이좋은 상태에서 자녀의 성장에 관심을 쏟아야지, 자녀를 소외시킨 채 부부끼리만 밀착되어 있으면 자녀에게 재앙이 된다. 부부 사이에 끼어들어 오이디푸스적인 승리감을 느끼지 못한 자녀는 자존감이나 자신감을 가지기 어렵다. “아빠는 해외 출장을 다녀올 때 늘 엄마 선물만 사왔어요.” “크리스마스에 아빠 엄마는 우리를 내버려둔 채 둘만 외출했어요.” “아빠는 퇴근하면 안방에 들어가 엄마하고만 시간을 보냈어요.” 믿기지 않지만 저 이야기를 하는 중년 여성들은 모두 눈물을 보였다.

김형경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