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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6%와 한국 농민 지병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산좋고 물맑은 농촌에 살고 있는 농민들이 공해에 시달리는 도시인들에 비해 지병율이 높다는 것이다.
12일자 본보에 의하면 한국 농민의 평균 지병율은 16·6%나 되어 WHO 기준 국민 지병율 평균의 3∼5배에 육박하고 있어 그 심각성을 잘 나타내고 있다. 또 질병에 걸리지 않는 농민도 대부분이 질병의 전 단계인 이른바 「농부증」 증상을 보이고 있어 반 건강·반 질병 상태에 있음이 드러나고 있다.
농민들은 일반적으로 조의소식을 하지만 도시민에 비해 쾌적한 자연 환경 속에 살고 있기 때문에 건강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었는데 이와 같이 지병율이 높다는 것은 충격적인 사실이다. 이는 곧 농민들이 영양을 잘 섭취하지 못하며 유기질이나 「비타민」이 모자라 영양 실조 상태에 있거나 발육 부전 상태에 있음을 짐작하게 하는 것이다. 또 전분질만을 많이 섭취하기 때문에 위장병에 걸려있을 확율도 많다고 하겠다.
특히 현대 도시 생활자와 같은 「스트레스」가 별로 없을 농민들에게 신경질 환자가 많다는 사실은 놀랍기만 하다. 위장병이 18·3% 구각염이 12·4% 밖에 안되는데 신경 질환이 조사 대상자의 24·3%나 된다는 사실은 농민의 건강에 대한 적신호가 아닐 수 없다. 특히 여자의 신경성 질환율이 28·4%나 된다는 것은 4명에 한사람 꼴로 신경 질환에 걸리고 있는 셈이다.
농촌 여성들이 이처럼 농부증에 걸려 있고 신경 질환에 걸려 있는 것은 대부분이 가족 구성이나 사회 구조의 결함 때문이 아닌가 추측된다.
농촌의 40대 이상 여성은 대개가 교육을 받지 않았거나 국졸 정도의 학력 밖에는 갖지 못했을 것이므로 이들은 과거의 인습과 미신에서 아직도 헤어나지 못한 것이라고는 짐작도 간다. 이들은 고된 시집살이를 하고 시어머니가 되었는데 며느리나 아들들은 시부모를 섬길 줄 모르며 분가하거나, 시부모를 봉양하는 경우에도 고부지간의 사이가 좋지 않아 그 때문에 신경 질환에 걸릴 가능성도 없지 않을 것이다. 이밖에도 신구세대간의 감각의 차라든지 농촌의 빈곤, 농촌 사회의 폐쇄성과 오락 기회의 결핍 등이 이들로 하여금 조추증으로 인도하는 것만 같다.
농자는 천하지대본이라고 생각되었던 것은 옛날이고 지금은 조금만 공부한 사람은 모두가 상경하고 웬만한 사람은 이농하는 현실에서 농촌에서 농토를 지키고 있는 사람들의 패배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이들에게 희망을 주고 농민으로서의 긍지를 심어주어야만 농민의 신경성 질환은 줄어들 수 있을 것이다.
정부는 농민들에게 항상 불리한 협상 가격 책정을 지양하고 농산품 가격을 대폭 인상해 주어야 할 것이며, 농민들이 국민의 식량 확보를 한 전사라는 점을 감안하여 농사를 짓는 보람과 값어치를 보답해 주어야 할 것이다. 세계 각국의 예에서 보는 바와 같이 농민들의 희생에만 의존하고 있는 중상 정책은 파탄을 면할 수 없을 것이다. 또 정부는 농민의 정신건강을 위해 오락 시설·양호 시설 등의 보급 문제를 심각하게 고려해 봄직하다.
농민들은 또 그들만이 직접 피해자가 되고 있는 농약 공해에 시달리고 있으며 이로 인한 피부 질환도 늘어나고 있다. 그런데도 농민들에게는 아직도 의료 시설이 접근하기 어려운 곳으로 돼 있다.
따라서 11일자 본난도 지적한 바와 같이 보건소마다 전사를 배치할 것은 물론, 병들어 신음하고 있는 농민들에 대한 무료 시료와 순회 진찰 제도를 확립하는 것이 상면한 급선무이다. 농민들 중에는 병이 있더라도 진료를 받을 기회가 없어 조기 발견이 안되어 불치로 되는 경우도 허다한 것이다. 따라서 집단 검진을 위한 순회 진찰만이라도 꼭 제도화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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