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에의 모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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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셀라시에」 황제의 「최후의 날」은 희극이랄지 비극이랄지, 그런 착잡한 광경을 보여 주고 있다. 황제가 연행되어 가는 모습을 보고 있던 연도의 사람들은 『이 강도야! 강도야!』하고 고함을 질렀다고 한다. 백성의 가슴에 오죽이나 원한이 맺혔으면 그랬을까. 모든 철권의 독재자가 그렇듯이 「셀라시에」라고 예외는 아니었던 것 같다. 그는 12년의 섭정과 44년의 황제로 군림한 『신과 같은 기대자』였었다.
이런 황제를 쓰러뜨린 배경은 실로 무엇일지 궁금하다. 그것은 단순히 『선악의 응보』로만 생각하고 말기엔 너무도 박진감이 있는 세계사적인 사건일 것 같다. 「이디오피아」 황제의 낙조는 벌써 몇 년 동안 거듭된 이곳의 가뭄에서 비롯된 것 같다. 외지의 사진 「르포르타지」들은 그 넓고 황막한 벌판에서 굶주림에 시달린 백성들이 짐승처럼 기어다니며 낟알을 줍고 있는 모습을 보여 주었었다. 이것과는 대조적으로 「셀라시에」 황궁에선 수 10마리의 고급 견들이 미식을 즐기고 있는 형편이었다.
「이디오피아」는 주민의 90% 이상이 농업과 목축에 종사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이 일하는 토지는 45%가 황족들의 몫이며, 28%를 국교인 「이디오피아」 정교 (「고프트」 기독교)가 차지하고 있다. 이들의 농노나 다름없는 존재인 백성의 입에 언제 따뜻한 밥이 들어갈 겨를이 있었겠는가. 더구나 한발마저 겹친 상황이니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이런 극한 상황속에서 드디어 군부는 반기를 들기 시작했다. 작년가을 서독 방문을 마치고 돌아오는 황제를 공중에서 납치하려는 해군부사령관의 기도가 있었는가하면, 금년 2월엔 제2의 도시 「아스마라」에 있는 한 사단이 반란을 일으켰다. 이들 군부 내 반란의 주동 세력은 대부분이 「엘리트」 「그룹」들이었다고 한다. 황실의 학비를 받아 선진 외국에 유학을 다녀온 청년 장교들이 나선 것이다. 「셀라시에」는 그야말로 「믿는 도끼」에 발등이 찍힌 꼴이 되었다. 문맹자가 90%나 되는 나라에서 볼 수 있는 『근대화의 「아이러니」라고나 할까.
군부내의 이들 혁명 「그룹」은 하루아침에 모든 일을 해치우지는 않았다. 무려 6개월을 두고 부패 고관의 체포, 황족의 부정 폭로 등 몇 단계를 두고 혁명을 진행했다. 무지한 민중은 이런 과정에서 군을 믿고 지지하며, 한편으로는 황제에의 반감을 행동으로 옮기게 되었다. 드디어 황제는 폐위의 날을 맞고 말았다. 이제 「이디오피아」 혁명의 향배는 토지 개혁의 성패에 달려있다. 황실과 종교 단체에 독점된 땅은 아직 그들의 무장한 사병들에 의해 지켜지고 있다. 군부의 혁명 세력은 이들 사병들로부터 끊임없는 도발을 받고 있다. 군부는 그들의 무장 해제와 함께 토지를 농민의 손에 돌려 줄 수 있을지-. 「이디오피아」의 전제는 결코 밝지만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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