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 단계…주한미군 개편|철군 앞선 기동후비군화의 파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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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주한미군 3만8천명의 장래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 올 계획안이 최근 미국 의회와 국방성에서 활발히 논의되고 있다. 이와 같은 시안들은 모두 궁극적으로는 주한미군의 철수를 상징하고 있기 때문에 큰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특히 이번 가을 「유엔」 총회에 『「유엔」 깃발하의 외국군 철수』라는 의제를 북괴 지지국 쪽에서 내어놓고 있는 상황에서 그와 같은 논의는 군사 면에서 뿐 아니라 외교 면에서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의회에서 제시하고 있는 계획은 「유엔」군 사령부를 해체하여 미군사에 통합시키고 전방에 배치된 미군을 한강 이남으로 이동시킴으로써 전쟁이 일어날 경우 이에 자동적으로 말려드는 것을 피할 뿐 아니라 76회계연도에 부분적 철군을 실시할 수 있도록 길을 터놓자는 것이다 (8월1일 하원 세출위의 대 국방성 권고 안).
국방성의 계획은 주한미군을 점차적으로 철수시켜 「괌」이나 「하와이」에 기동후비군을 창설하고 유사시에 한국을 포함한 이 지역에 출동할 수 있게 하는 안이다 (2월28일 「슐레징거」 국방장관의 하원 세출 위원회 국방 분과위 증언).
국방성은 의회의 권고 안을 이미 받아들여 검토하기 시작했다고 보도되었으며 동시에 국방성안의 구체적 세부도 빠르면 10월중으로 발표할 것이라는 보도가 있었다.
내용 면에 있어서 의회의 권고 안은 국방성이 마련한 기동후비군 계획 속에 포함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국방성이 현재 자체안과 의회 권고를 절충하고 있다는 인상이 지배적이다.
이와 같은 움직임은 월남전을 계기로 미국 내에서 일기 시작한 신 고립주의적 미군 철수론과는 그 성격이 구별되는 것이다. 「풀브라이트」 상원 외교 위원장을 중심으로 「처치」·「쿠퍼」 의원들이 대변한 신고립주의 경향은 과대하게 팽창한 미국의 군사적 공약을 축소시키고 여기서 나올 자원의 여분을 국내 문제로 돌려야 된다는, 어느 면에서는 미국의 국제적 영향력을 대폭 축소시키자는 견해를 밑바탕에 깔고 있었다. 그러나 최근 의회와 국방성에서 나오고 있는 미군 철수론은 기존 군사력 균형을 깨뜨리지 않는 한도 안에서 미군의 전략적 경제성을 높이는데 역점을 두고 있다는 점이 특이하다.
의회 권고 안은 미군 개편의 방향에 관해 『주한미군의 방어력을 약화시키지 않고 경제 절감을 하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미군 철수에는 『한반도 문제의 정치적 해결을 보장할 수 있는 외교적 노력이 선행 내지 수반되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또 미 국방성과 국무성 쪽에서도 한반도의 안보에 대한 미국의 공약은 미국 이익에 부합되는 것이기 때문에 계속되어야 한다는 점을 기회 있을 때마다 주장해 왔다.
의회와 국방성의 움직임을 이와 같은 공식 의사 표명만을 토대로 검토할 때 미국 병사의 전쟁 노출도를 최소한으로 줄이면서 미국의 군사적 영향력을 현상대로 유지할 수 있는 효율적인 방법의 모색으로 진단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러한 방향은 월남전을 계기로 나온 ⓛ미군의 국지전 개입 방지 ②「데탕트」 외교와 미국 이익의 방어를 위해서는 군사력의 우위가 유지되어야 한다는 두가지 명시아래 세계적으로 진행되어온 해외 미군 재편 작업과 일치하는 것이다.
이 두 명제로부터 대외적으로는 「닉슨·독트린」 이라는 대리 전쟁 방식이 나왔고 대내적으로는 지원병만으로 구성된 기술병 제도가 나왔다.
「닉슨·독트린」은 미국 병사들을 전지에서 후퇴시키면서 미국 군사력의 영향력은 그대로 유지시키려는 정책이며 직업 기술병 제도는 고도의 무기 개발로 전쟁의 현장과 국민간의 거리를 넓힘으로써 병사들의 희생을 줄이고 전쟁에 대한 국민의 혐오감을 감소시키는데 목적이 있는 것이다.
「슐레징거」 국방장관은 취임이래 불필요한 국내외 기지 통합사의 폐쇄·지원 병력과 예비 병력의 감축 등을 통해 마련된 여분의 예산을 보다 정교한 무기 개발과 전투 병력의 증강에 쏟아봤다.
그 결과 지난 4년 동안 미군 병력은 22사단 (3백60만명)에서 16개 사단 (2백10만명)으로 줄어들었지만 75회계연도의 국방 예산은 사상 최고인 8백60억 「달러」가 상정되었다. 새 무기 개발 기금으로 책정된 액수도 53억「달러」 에 달하고 있다. 이와 같은 조치는 모두 경비와 병력 수를 최대한으로 절감하여 그 여분을 국방 이외의 목적에 전용하려는 것이 아니고 바로 국방력 자체를 보다 근대화하고 효율화하는데 바치는데 있다.
이와 같은 경제성 위주의 전략은 주한미군을 보는 미국 전략가의 눈이 북괴나 중공의 위험에 대한 방어라는 구체적인 목적보다 극동 지역의 군사력 공백을 메우는데 역점을 두고 보게 한다.
여기에서 주한 미군의 기능에 관한 한국측 기대와 미국측 관점은 근본적인 차이를 드러낸다. 즉 한국측에서 미군의 존재를 유사시 미군 개인의 담보로 간주하고 있는데 반해 미국은 이를 이 지역에 대한 미국의 공약의 상징물로 보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미국은 주한미군이 전쟁에 자동적으로 말려드는것을 피하면서 동시에 급격한 철수로 군사력 균형상의 공백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역할을 이에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한국측이 주한미군에 대해 군사적 역할을 기대하고 있는데 반해 미국측은 단순히 정치적 역할만을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 역할을 감당하기 위해서라면 미군이 휴전선에 배치될 필요도 없고 또 3만8천명보다 적은 수로라도 충분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국방성 측의 기동후비군 안도 이 역할을 위해 최대한으로 병력을 줄이는 한 방안으로 제시되고 있는 것이다. 또 「데탕트」 외교를 이 목적을 위해 동원할 기세도 보이고 있다.
한반도의 안보보다는 극동 지역의 세력 균형에 초점을 맞춘 미국의 이러한 관점을 의회 즉 권고 안에 맞춰 볼 때 「유엔」사 해체 안은 결국 미군 철수를 요구하는 북괴 측 「유엔」 의제에 유리한 배경을 제공하는 것이기 때문에 한국으로서는 신중한 대책을 시급히 세우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장두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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