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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분석] 올해도 마이너스 통장으로 살림 시작하는 정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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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지난해 나라 곳간 사정이 1년 전보다 한층 더 나빠진 것으로 나타났다. 오랜 경기침체로 세금이 예상보다 적게 걷혔기 때문이다. 10일 기획재정부가 2013년도 총세입·총세출을 마감한 결과 총세입은 당초 예산보다 10조9000억원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여파로 한 해 나라 살림의 결과인 세계잉여금이 8000억원에 가까운 적자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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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황의 그림자는 세목에서 확연하게 드러났다. 기업 경영이 크게 악화하면서 지난해 법인세는 2012년보다 2조1000억원이 덜 걷혔다. 부동산시장 침체의 여파로 양도소득세가 8000억원 줄어들었고, 주식 투자 여력 역시 없어지면서 증권거래세도 6000억원 감소했다. 교통·에너지·환경세 역시 6000억원의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세입이 늘어난 세목은 주로 경기와 관련 없는 부분이었다. 근로소득세는 2조3000억원 증가했다. 이에 대해 이석준 기재부 2차관은 “기업 수익이 줄어들어도 근로자에 대한 임금은 예정대로 지급되니까 근소세가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며 “지난해 취업자 수가 38만 명 증가하고 명목임금이 상승하면서 자연 증가분이 있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증여세가 4000억원 늘어났지만 지난해 처음 시작된 일감 몰아주기 과세 여파였고, 종합소득세가 1조원 증가한 것도 경기와는 무관하게 고액 자산가에 대한 과세 강화 영향에 따른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이같이 세목별로 세입 실적이 엇갈린 가운데 총세입이 292조9000억원에 그치면서 당초 예산(303조8000원) 대비 10조9000억원이 덜 걷힌 게 세계잉여금 적자폭 확대에 결정타를 날린 것으로 분석됐다. 세계잉여금은 당해 연도에 쓰고 남은 돈(결산상 잉여금)에서 다음 연도에 이월해 써야 하는 돈을 제외한 금액이다. 국세와 세외수입, 인건비와 사업성 경비, 국채 발행과 관련된 모든 수입과 지출이 포함된 개념이다.

 결산상 잉여금은 지난해 총세입(292조9000억원)에서 총세출(286조4000억원)을 뺀 6조5000억원이다. 여기서 지난해 다 쓰지 못한 이월액 7조2000억원을 차감하면 세계잉여금은 -7554억원이다. 이는 지난해 1484억원에서 1년 사이 5배가량 불어난 규모다. 지난해보다 더 큰 구멍이 뚫린 ‘마이너스 통장’을 들고 나라 살림을 꾸려 가게 된 것이다.

 역대 정부는 줄곧 세계잉여금 흑자를 내왔다. 세금이 잘 걷히면서 흑자 행진을 벌였고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인 2007년에는 16조4839억원까지 불어나기도 했다. 이후에도 6조~8조원의 흑자를 유지했다.

그러다 우리 경제가 저성장의 늪에 빠지면서 세계잉여금이 적자를 보이기 시작했다. 성장률이 2%에 그친 2012년 처음으로 마이너스를 기록한 뒤 지난해 성장률이 2.8%(잠정치)에 그치면서 적자폭이 더욱 확대됐다.

이석준 차관은 “올해는 세입 전망이 더욱 정교해지고 경기회복세가 이어져 성장률이 예상대로 3.9%에 가깝게 달성되면 지난해보다는 재정 상황이 개선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세종=김동호 기자

◆세계(歲計)잉여금=정부가 연간 계획을 짜서 재정을 운용할 때 세금이 예상했던 것보다 많이 걷혀 돈이 남을 수 있다. 이렇게 남은 돈 중에서 ‘다음 해로 넘겨 써야하는 돈(이월액)’을 뺀 금액이 세계잉여금이다. 세계잉여금이 적자가 났다는 것은 그해 세금이 정부 예상보다 적게 들어왔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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