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973년8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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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정신적 교합이나 국민감정의 조화가 따르지 않은 채 한·일 양국이 주로 경제의 교류에서 이웃으로서의 거리를 좁혀나갈 때 뜻하지 않은 문제가 퉁겨져 나왔다. 김대중씨가 동경에서 피납된 73년8월의 사건이다. 일본이 관동지진에서 한국인을 대 학살한 사건이 있은 지 꼭 50년이 지난해다.
애당초 이 사건이 벌어졌을 때, 사건이 너무나도 황당했기 때문에 이 사건의 진상규명이나 그 뒷수습이 쉽지 않으리라고는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불행한 사건에 이어 또 하나의 해괴한 사태가 전개되리라고는 짐작할 수 없었다. 73년8월 이후 일본의 대한 태도가 바로 그것이다. 73년8월 이후 일본 언론의 편파보도가 지나치고 때로는 언론과 정부가 한국의 국가적 위신과 민족적 자존심을 손상하는 바로 그것이다.
일본의 언론이 상업주의적이고 일본의 정치가 언론과 선거구민에 말초적으로 영합하고 있는 것이려니…하는 아량으로 덮어두기에는 한계를 지나쳤다.
나라마다의 국내적 입장과 대외적 입장을 생각해보자.
김씨 납치의 동기가 어떠했든 간에 한국의 국민들은 벌어진 결과를 안타깝게 생각했으며 사건진상의 규명을 바랐다.
그런 무뢰한의 주먹바람을 외국에서까지 일으켜 한국에는 무법·불법이 횡행한다는 인상을 외국에 준 결과를 안타깝게 생각한다.
아직껏 사건은 시원히 규명되지 않았다. 이점 또한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나 규명을 바랐던 여망이나, 규명되지 못한 것, 또 그에 대한 안타까움은 모두가 우리 국민의 것이다. 외국인이 함께 바라고 안타까와할 수는 있으나 그것을 권리처럼 얘기할 수는 없다.
73년 8월이래 일본은 대한 태도에서 감정이상의 간섭적 작태를 보이지 않았는지 생각해 봄직하다.
김씨 사건에 관해서는 일본에서 공권력 침해여부가 논란되어 한국에서는 국무총리가 진사방일까지 했다. 일본의 한국침략통치에 대한 일본수상의 진사방한이 몇 10년 걸려서 얼마나 간신히 이루어졌던가를 생각할 때 피납 사건이 역으로 일어났을 때 과연 일본은 어떤 태도를 취했을지 크게 의심된다.
한·일 관계의 굴곡점이 된 김대중씨 사건에 관해 일본의 어느 평론가는 이렇게 분석했다.
『일본의 젊은 세대는 한국통치에 대한 죄책감을 갖지 않고 있다. 이승만 「라인」 때문에 일 어민이 피해를 보고있다는 정도에서 한국을 느껴온 이 젊은 세대에는 김대중씨 사건으로 피해자 의식이 가중됐다. 한편 한국에는 36년간 압정에 대한 뿌리 깊은 피해자의식이 있는데 이 두개의 의식이 부딪쳐 한·일 관계가 흔들리고 있다.』
사뭇 과학적인 분석 같은 이 견해는 진실을 보지 못했거나 아니면 지각 얕은 전후세대에 의해 좌우되고 있는 일본의 한 단면을 실토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형량될 수 없는 두개의 「피해」를 한 선 위에 놓고 비교한 것만 보아도 명백하다.
이 「라인」을 통한 피해의식-. 이 「라인」은 온 국민이 사활을 걸고 싸우던 동난 중, 일본어선이 부산부두까지 와서 옥신각신하고 있는 중에 선포됐다. 불난 집 앞마당에 와서 닭 잡아가던 구적에 대한 비분의 자구선언이었다.
여기서 비롯된 일본의 피해의식을 한국민족이 갖고있는 『뿌리깊은』 피해의식에 어찌 비할 수 있을까. 여러 가지 들지 않아도 좋다. 불과 50여년 전의 악몽을 60대의 사람들은 모두 기억하고 있다. 나라를 찾겠다는 외침에 총부리를 대고 선량한 수만의 사람을 학살했다. 수십, 수만 명을 교회에 몰아넣고 불도 지르고 수천 명의 독립운동가를 모질게 고문했다. 유태인에 대한 「나치」의 횡포에 앞서는 이 참혹상은 일본의 작가들조차도 많은 기록으로 남겨놓았다. 이 비극을 겪은 국민의 피해의식을 조금이나마 상살할 또 다른 피해의식이 있을까.
73년8월 이후의 대한 일본태도는 피해자의식·가해자의식으로 설명 될 수 없다. 그보다는 일본이 한국에 대해 후견적 입장에 설 수 있는 것으로 중대한 착각을 하고 있다는 것이 진실에 가까울 것이다. 일본이 한국에 비해 선진 했다는 것, 경제관계에서 일본이 주고있는 입장이라는 것 때문에 생겼을 이 착각은 그러나 자기존대나 방약무인이라기보다는 차라리 비굴과 망령의 착각이마.
방미한 일본 의원단이 미국 부통령을 만나 대한 단원 등의 조치를 문의한 것에서 비굴을 볼 수 있으며, 다른 사람 아닌 기미 독립만세 사건의 폭압 총 책임자 우도궁태랑 대장이란 살인괴수의 아들(우도궁덕마 의원)이 대한 발언에 앞장섰다는 것에서 망령을 느낀다.
우도궁 의원은 얼마 전 평양의 김일성에게 평신저두하고 돌아와 한국의 북침 위협이 있다는 엉뚱한 얘기를 했는데, 그가 주도하는 「AA연구회」의 한국문제 거론이 일본의 대한관에 조금이라도 영향을 준다면 더욱 해망한 일이다.
어느 나라 건 자신의 국제정치상 영향력을 신장하려고 한다. 그러나 그것과 타국에 대한 내정간섭은 엄연히 구별된다. 영향력행사가 서투를 때 그 결과는 상호간에 불행을 가져오는 것 외에 아무 것도 남기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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