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한 직원에게 큰 상 주며 격려 … 여전히 팔팔한 97세 광고사 그레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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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준영
보스턴컨설팅그룹(BCG)
서울사무소 파트너

광고회사 그레이에는 ‘영웅적인 실패 대상(Heroic Failure Award)’이라는 독특한 포상제도가 있다. 분기마다 수상자를 선정하는데, 그냥 칭찬 몇 마디로 때우는 조촐한 상이 아니다. 수상자에게는 크고 멋진 트로피를 준다. 여기엔 ‘영웅적인 실패 상-성공을 굉장히 소심한 일로 보이게끔 만드는 영광스러운 패배’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조심만 하다가 뒤처지는 것보다, 결과적으로 홀딱 망한 일이었다 해도 뭔가 깜짝 놀랄 만한 시도를 하는 게 백배 낫다”는 것이 이 회사의 철학이다.

 독특한 문화를 갖고 있는 것을 보니, 신생 벤처기업쯤 되는 것 아니냐고 여길 수 있겠다. 그레이는 1917년에 설립된 거의 100살 먹은 글로벌 대기업이다. 3M·알리안츠·캐논·보쉬 등 쟁쟁한 기업이 이 회사 주요 고객이다. 하지만 이 회사는 지난해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50대 기업’(미국 경제경영전문지 패스트컴퍼니 선정)에 꼽히는 등 변치 않는 젊음을 유지하고 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문화 덕분이다.

 실패는 혁신과 뗄 수 없는 관계다. 대부분의 혁신적인 행동은 쓸모없는 짓, 말도 안 되는 시도다. 말도 안 되는 일을 자꾸 하는 걸 옆에서 지켜본다면 얼마나 분통 터지겠는가. 혁신은 그런 것이다. 스티브 잡스가 2005년 스탠퍼드대 졸업연설에서 “Stay foolish”라고 말한 것은, 글자 그대로 ‘바보 같은 짓’을 계속 하라는 뜻이다.

 바보 같은 짓의 실패 확률이 높은 것은 당연하다. 그럼에도 새로운 시도를 멈출 수는 없다. 지금 기업이 잘된다 해서 제자리에 서 있으면 곧 뒤처지는 것이 비즈니스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AOL타임워너 그룹의 테드 터너 부회장은 뉴스의 고정관념을 깬 퍼스트 펭귄이었다. 사람들은 ‘뉴스란 매일 정해진 시각에, 30분쯤, 경제·정치 등 각 분야의 소식을 패키지로 보는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했다. 터너 부회장은 고정관념을 깨고 1980년대 하루 종일 실시간 뉴스를 생방송으로 내보내는 혁신적인 채널 CNN을 시작했다. 이런 대담한 시도가 곧바로 성공 스토리가 됐을까. 현실은 반대였다. CNN은 수년간 어마어마한 적자를 냈고 사람들은 비웃었다.

 혁신을 추구하는 경영자가 할 일 중 하나는 ‘분통 터지는 짓’을 방조하고 적극 조장·권장하는 문화와 시스템을 만드는 일이다. 뭔가 새로운 것, 지금과 다른 것을 끊임없이 시도하고 상상하게 하는 것이다. 이때 한 가지만 기억하면 된다. 결과가 어떨지와 상관없이 계속하는 것이다.

변준영 보스턴컨설팅그룹(BCG)
서울사무소 파트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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