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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 영화천국] "대역 들키면 무슨 창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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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지난 주말 개봉한 첸 카이거 감독의 '투게더'를 보니 꼬마가 바이올린을 신들린 듯 켜는 대목이 나오더라. 진짜로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건가. 영화에서 악기 연주하는 장면은 보통 대역을 쓰는 걸로 알고 있는데.(izmademo@dreamwiz.com>)

(A)배우에게 호환.마마보다도 더 무서운 건 관객의 눈 아닐까. 손 따로 얼굴 따로 음악 따로? 구차하기도 하지만 요즘 같아선 '관객 우롱죄'로 몰려 '7천원 반환 청구소송'이 어쩌고 하기 십상이다.

연주 장면의 비중이 큰 영화일수록 가급적 대역을 쓰지 않는다고 보면 된다.

'투게더'에서 차이코프스키 바이올린 협주곡 D장조를 연주하는 소년은 상하이 음악원 부속 중학교 2학년에 다니는 바이올린 전공자다. 상하이 콩쿠르에 참가했다가 제작진의 낙점을 받아 뜻하지 않은 배우의 길로 접어들었다.

대역을 쓴다 해도 '짝퉁'표시를 내지 않으려면 연습, 또 연습 말고는 왕도가 없다. 이것은 배우로서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라고도 할 수 있다. '피아니스트'에서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나치 장교 앞에서 쇼팽의 발라드를 연주하던 주인공 애드리언 브로디의 솜씨는 자누스 올레니작이라는 폴란드 피아니스트의 것이다.

하지만 브로디는 이 영화를 위해 피아노를 배웠다. 손을 클로즈업하는 장면만 대역을 쓰고 나머지는 직접 쳤다.

지난해 말 '피아노 치는 대통령'에서 '러브 이즈 어 매니 스플렌도어드 싱(Love is a many splendored thing)'을 연주한 안성기. 그는 태어나서 한번도 건반을 두들겨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석달 동안 자신이 눌러야할 건반의 위치를 통째로 암기하는 '단순.무식.열정'의 불꽃 트레이닝을 거쳐 끝내 감독의 OK 사인을 받아냈다.

가을 음악회에서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8번 '비창'을 연주하던 '클래식'의 손예진도 진짜 본인의 솜씨다. 어릴적 과외 열풍에 휘말려 잠깐 배웠던 피아노가 이렇게 도움이 될 줄이야.

손예진 말고도 피아노 학원으로 등 떠밀던 엄마의 치맛바람이 훗날 자식의 몸값을 높이는 선견지명이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은 여배우들이 꽤 된다는 소문이다.

올 아카데미상 13개 부문 후보에 오른 뮤지컬 영화 '시카고'의 주연 르네 젤웨거.캐서린 제타 존스.리처드 기어는 영화에 쓰인 브로드웨이 히트곡 10여곡을 직접 불러 화제가 됐다.

이렇듯 최근의 추세는 '진품 명품'이다. 진실만이 감동을 줄 수 있다는 진리 때문이다. 오죽하면 '색즉시공'의 임창정은 이마로 그 매운 마늘을 빻고 쇠망치로 가슴을 내리치는 고통을 감내했을까. 이유는 하나다. "관객이 눈치채면 끝이라니까요."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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