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의 논문 양산 문제점 많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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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매년 학년초나 학기초가 되면 각 대학들은 다투어 「논문집」「논총」등의 이름으로 교수들의 논문을 발표하고있다. 또한 각 대학의 많은 부설연구소 및 그 밖의 학회에서 각기 계간·반년간·연간, 또는 부정기적으로 「논문집」「학회보」「학술지」등을 내고있다. 이렇게 해서 발표되는 교수들의 논문은 전국적으로 매년 3천편 이상인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그러나 해마다 발표된 이 많은 논문들이 지금까지 학계에 얼마나 보탬이 됐고, 또 앞으로 어떻게 기여할 지에는 회의적인 의견이 지배적이다.
즉 대학교수들의 논문이 양적으로만 많았지 질적으로는 수준이하의 것이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아무도 읽지 않는 논문만의 양산』이라고 반성하는 교수들도 많다.
또 대학교수가 발표한 논문은 발표 그 자체로 끝나고 사장돼버리는 것이 보통이다. 어떤 교수가 논문을 발표하면 그에 대해 다른 교수들이 평가회를 가지고 비판을 가해 완성시켜 나가는 작업도 제도적으로 없다.
논문을 발표하는 교수는 무신경하게 수준 이하의 논문을 예사로 내놓고 그와 같은 분야의 학문을 연구한다는 다른 교수들은 남의 논문에는 아예 관심도 두지 않는 것이 오늘날 학계의 풍토처럼 되어버렸다.
교수들이 논문을 쓰는 것은 정말 새로운 연구를 해서 학계에 도움되게 하기 위한 경우, 직업이 학문을 연구하는 교수니까 가끔가다 써보는 경우, 조교부터 정교수까지 진급하자면 논문의 실적이 있어야하니까 쓰는 경우, 또 문교부나 대학 또는 민간재단으로부터 연구비를 받았으니까 의무적으로 쓰는 경우 등으로 나눌 수 있다.
교수들이 자발적으로 쓰는 논문은 비교적 문제가 적지만 실적을 올리기 위하거나 연구비를 받고 의무적으로 쓰는 논문에 수준 이하의 것이 많다는 것은 제도적으로 문젯점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연구비의 경우, 교수들은 연구비를 받아서 생활비로 다 쓰고 그 일부를 연구비에 보태는 것이 보통이다. 교수란 다른 직업과 달라 책을 사거나 실험을 하는 등 계속 투자를 해야 하는데 현재의 월급으로는 최저한의 생활이 보장되지 않아 연구비를 끌어다 생활에 보태지 않을 수 없다는 주장이다.
이렇게 해서 마지못해 쓴 논문이 무게 있고 권위있는 것이 되기는 어려울 수밖에 없다. Y대의 L교수는 이제 연구비를 지급하는 쪽도 좋은 논문이 나오리라고는 아예 생각을 않고 있고, 연구비를 받는 교수도 형식상 내기만 하는 것이라고 가볍게 생각하게끔 됐다고 말했다. 그러니까 연구비를 주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나 모두 그 돈을 연구비가 아닌 생활비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학교수가 받고있는 연구비는 문교부가 지급하는 학술연구조성비, 대학자체에서 지급하는 연구비, 연구소가 지급하는 연구비, 민간재단의 연구비 등이며 1건 1인당 많아야 40만∼50만원이 보통이고 적은 것은 10만∼20만원 정도도 있다.
또 이런 연구비들은 다른 단체의 연구비와 한 사람에게 중복 지급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있다. 한 교수가 연간연구비 40만∼50만원을 받아 생활비에 보탠대야 한달에 3만∼4만원 꼴밖에 안되며 책을 사고 실험을 하는 등 연구에만 몰두하기에는 어림없는 액수다.
그나마 이런 연구비를 매년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문교부 연구비의 경우, 한번 받은 교수는 그 학교 안의 다른 교수들이 모두 받아 한바쿼 돌아오기 전에는 다시 받지 못하도록 되어있다. 좋은 연구를 한 교수에게 연구비를 더 주어 계속 연구를 시키는 것이 아니라 모든 교수에게 고루 혜택을 준다는 나눠 먹기식 연구비 지급방법은 바로 연구비가 아닌 생활비로 준다는 통념을 만들고 말았다.
문교부가 올해 지급한 학술연구조성비는 모두 1천6백여건에 4억7천여만원. 그러니까 올해도 이 연구비로만 1천6백편의 논문이 쏟아져 나올 것이라는 계산이다.
논문집을 덜 내는 대학원이 중심이 되거나 편집위원회가 따로 있는 것이 보통이지만 그것
은 형식뿐이고 논문의 엄선은커녕 오히려 구걸해서 논문을 얻는 실정이라는 것이다. 연구비를 받고 의무적으로 쓴 논문이나 진급에 필요한 건수를 채우려는 형식적 논문이나 모두 선택없이 실려지고 있다는 것이다. 선진국의 경우 대학교수논문집에 논문 한편을 실으려면 제출하고도 2∼3년을 기다려야 한다는 것과는 너무도 거리가 먼 얘기다.
K대의 A교수는 연구비를 타서 생활비로 쓰지 않아도 되게끔 연구할 수 있는 여건의 개선이 앞서야하며 좋은 논문이 나오면 논문상을 주는 등의 사후보상제도가 확립되어야 하며 발표된 논문에 대해서는 교수들이 공동으로 토론하고 연구비판 할 수 있는 풍토가 아쉽다고 말했다.
그는 또 교수의 논문이 한번 발표된 다음 그대로 사라져버리는 것은 첫째 논문내용이 시시해서 서로 관심을 두지 않기 때문이며 둘째 그 논문에 학술적 반박이나 비판을 가하면 당사자는 몰론, 제3자까지도 개인에 대한 인신공격으로 오해하므로 비판은 말로만 해버리지 글로는 삼가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S대의 K교수는 기본적으로 교수들이 전문적 저술활동을 할 여건이 못돼 깊이 있는 연구가 이루어질 수 없으며, 우리 학계는 아직 학문적 연구의 축적이 모자라 좋은 논문이 나오지 않고 있고 또 나올 수 없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이영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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