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사설

격랑의 한반도, 외교안보 큰 전략이 안 보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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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정부가 튼튼한 안보와 함께 평화통일 기반 구축을 올해 통일·외교·안보 분야 국정과제로 제시했다. 어제 있었던 외교부·통일부·국방부·국가보훈처 합동 업무보고에서 4개 부처 장관이 대통령에게 밝힌 내용이다. 이 자리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통일시대를 열기 위한 기반을 다지는 데 정책의 최우선 순위를 둬야 한다”며 “통일의 가치는 돈으로 계산할 수 없는 엄청난 것”이라고 강조했다. 신년기자회견에서 밝힌 ‘통일 대박론’의 연장선이다.

 국정 최고책임자가 통일 기반 구축에 무게를 싣다 보니 관련 부처의 올해 업무계획도 대통령과 코드를 맞추는 데 모아져 있다. 특히 대북정책 주무부처인 통일부의 업무계획은 장밋빛 청사진 일색이다. 박 대통령이 제안한 비무장지대(DMZ) 세계평화공원 조성 사업의 연내 착수, 나진·하산 물류사업 추진을 통한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추진, 농축산·산림 협력, 청소년·예술·스포츠·문화재 교류 확대 등 온갖 아이디어가 망라돼 있다. 이를 통해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 기조인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본격 가동함으로써 통일 기반 구축을 앞당기겠다는 것이다.

 남북이 이산가족 상봉에 합의함으로써 남북관계 개선의 첫 단추가 꿰어진 것은 사실이다. 또 북한 스스로 남북관계 개선을 촉구하는 등 변화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남북관계의 근본적 개선을 위해서는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건과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 사건을 매듭짓고 넘어가야 한다. 특히 천안함 문제는 대북 경협과 교류를 금지한 5·24 조치와 직결돼 있다. 북한에 거액이 들어가는 나진·하산 물류사업을 추진하려면 5·24 조치의 해제가 필수적이다. 하지만 통일부 업무보고에는 이런 문제에 대한 언급이 없다. 말만 요란할 뿐 실효성이 의심스러운 이유다.

 더 큰 문제는 북한 핵이다. 북한이 4차 핵실험을 하거나 장거리 미사일을 쏠 경우 남북관계 개선은 수포로 돌아간다. 북한의 불안정한 정세를 고려하면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외교부는 미국, 중국과의 전략적 공조를 통해 북한의 도발을 억제하고, 비핵화를 유도하겠다는 입장이다. ‘원칙 있고 실효적인 투 트랙 전략(PETA)’이란 걸 내놓았지만 억지로 꿰맞춘 외교적 수사란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북한 핵은 버락 오바마 미 행정부의 대외정책 우선순위에서 완전히 밀려나 있다. 전략적 인내를 내세워 사실상 방치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국도 뾰족한 대안이 없다. 6자회담은 6년째 실종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미·중과의 전략적 공조로 북핵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말은 공허하게 들릴 수밖에 없다.

 튼튼한 안보는 기본이다. 그 위에서 어떻게 남북관계를 풀고, 격랑에 빠진 동북아 정세 속에서 주변국과의 관계를 어떻게 가져갈 것이며, 북한 핵 문제는 어떻게 풀 것인지에 대한 전략적 그림이 안 보인다. 그래서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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