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 비평사이 불붙은 "화단논쟁"에 일언|이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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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전략) 국민총화를 도모해야할 중요한 싯점에서 불온한 언사와 불순한 단어를 만든 필자의 정신자세와 사상이 의심스럽고 저속하기 짝이 없는 착란증 환자의 글을 실은 공간지도 불성실한 편집과 필자를 방조 내지 동조한 것으로…(후략)』언뜻 보아서는 마치 그 무슨 공소장 같은 글귀다. 그리고 이 글은 다음과 같은 글귀로 맺어져있다.
『…요구사항을 안 들어주면 여사한 실력행사도 불사하겠다.』 그「실력행사」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는 몰라도 그 무슨 파업결의문 같이 금새 결판이 나야만 할 것 같은 서술이다.
그러나 사실은 그러한 것이 아니다. 이 글귀들이 어떤 한 화가에 대한 화가론이자 동시에 미술론이기도 한 글에 대해 일군의 화가들이 제기한 집단「항의문」이라고 한다면, 뭔가 잘못된 것이 아닌가 싶어질 것이 분명하다. 분명히 무엇인가 잘못되어있고 그것도 크게 잘못되어 있다.

<창작과 비평과의 고질적 악순환문제>
위에서 말한「일군의 화가들」이란 서울미대출신의 화가들이요, 문제의 작가론의 대상은 그들의 스승인 서세옥씨다. 비록 집필자 문명대씨의 논지가 그들의 스승의 경우를 통해, 동양화의 문젯점을 부정적인 측면에서 다루었대서 반드시 씨의 제자들이 집단적인「파워행사」로 나설 명분은 세워지지 않는다.
문제는 오히려 범동양화적인, 나아가서는 우리현대미술에 있어서의 범회화적인 차원의 것이기 때문이다.

<화단의 논쟁부재는 일찍이 지적된 문제>
물론 문명대씨의 논지에 나 자신이 전적으로 공감하느냐, 아니냐는 이 자리에서 논할 문제가 못된다. 또 그것이 문제의 핵심을 해결하는 열쇠도 되지 않는다. 여기에서 문제삼아야 할 것은 우리나라 미술계의 고질적인 병폐의 하나로 지적되는 창작과 비평과의 일종의 악순환이다.
작가가 작품을 통해 자신의 작품세계를 주장하듯이 평론가는 추어진 작품, 내지는 문제에 대한 평가를 통해 예술에 대한 자신의 주장을 펴 나간다. 또 그러한 주장이 서로에게 없다면 진정한 의미의 논쟁은 있을 수 없다. 그리고 우리나라 화단에 있어서의 이 논쟁부재가 지적된지도 벌써 오래 전부터의 이야기다.
그리고 이번의 집단항의 사태는 한마디로 논쟁이전의 것이다. 「실력행사」따위는 결코 정당한 반론일 수는 없는 것이다. 더군다나 짐짓 제공된 반론의 지면마저 거부하고 상대편을『불온한 사상의 소유자』『정신착란증 환자』로 몰아 세움으로써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시키려한다는 것은 좀 우스운 이야기다. 여차하면 나 자신도 그러한「환자」가 되기 십상이겠기에 말이다.
작가로서의 이른바 긍지를 그러한 시위로 밖에는 표명할 수 없는 그「일군의 화가들」은 다시 한번 그 무엇인가 크게 잘못되어있는 것만 같이 느껴진다.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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