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의 교육과 사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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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1806년에「프로시아」가「나폴레옹」에게 패배하자「쾨니히스베르크」에 피난 가 있던「피히테」는「프로시아」의 패주병들을 따라「베를린」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1807년 겨울부터 다음해 봄에 이르기까지『독일 국민에게 고함』이라는 연제로「프랑스」군이 지켜보는 가운데「베를린」에서 공개강연을 했다.
독일국민의 분기와 문화적인 세계제패를 외친 이 강연은 당장에 온「베를린」시민들을 감동의 도가니 속에 몰아넣었다.
이때 전후 14회에 걸친 강연 중에서「피히테」는 특히 언어에 대하여 2회나 강론했다. 민족문화의 발전을 위해 그만큼 언어가 중요하다는 것을 그는 통감했던 것이다.
문교부는 지난 70년부터 순한글로만 편찬했던 중·고교 교과서를 75년부터 한자병용 체제로 다시 바꾸기로 했다고 한다.
한자를 전부 빼 버린 채 편찬된 국어과나 국사교과서를 가지고서는 도저히 교육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
아닌게 아니라 한자를 뺀 국사책이란 마치 선문답과도 같은 것이다. 당대의 명승 사언은 눈 석상에서 좌선을 했다. 그는 묵상을 하다 이따금 혼자말로『주인공!』이라 소리치고는 이어『네』하고 자답하는 것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이렇게 주인공이라 부르는 자와 답하는 자, 두 사람을 마음속에 갖고 있다. 하나는 일상적 자아요 또 하나는 본질적 자아다.
이런 둘 사이의 대화가 많을 수록 그 사람들의 마음은 풍요해지고 적을수록 가난해진다.
그러나 범속의 사람들에게는 사언의 문답이 뭣인지 전혀 알 길이 없다. 주인공을「주인공」이라고만 적으면 더욱 그것은 풀길 없는 단어라고만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국사 책에는 이런 선문답과도 같은 구절이 쉴 사이 없이 나온다. 한 예로 개화당은 나라를 개화시키자고 주장한 당이었다. 그게 그냥「개화당」으로 적혀 있다. 여기엔 아무 뜻이 없다. 그러니 그저 외고 삼킬 수밖에 없다.
사화를 사화라 적는 사가도 있다. 양자사이엔 그 나름의 근거가 있다. 그게 그냥「사화」라고 표시되고 만다. 「사화」라고만 배웠다고 사화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것은 아니다. 다만 학생은 그만큼 사고를 생략 당하고 마는 것이다.
한자교육에 대해 아직도 일부 한글전용론자는 반대론을 펴고 있다. 그러나 한자를 배우는 것과 사용하는 것과는 엄격히 달리 생각해야 옮을 것이다.
그들은 이점을 알면서도 굳이 그러한 외고집을 부리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정작 걱정할 것은 다른데 있다. 교과서를 바꾸겠다는 것은 그래야 할 이유가 바꿔서는 안될 이유보다 더 크다고 여겼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지난 70년부터 74년까지의 학생들은 75년 이후의 학생들보다 그만큼 교육을 잘못 받았다는 것이 된다. 그 보상이 문제인 것이다. 언어교육이란 결코, 여름철 기상도처럼 손쉽게 바꿔지는 것이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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