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론 시대의 종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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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아르헨티나」의 「페론」 신화는 드디어 막을 내리는 것 같다. 80세를 눈앞에 보는 노령에 종신 대통령이 되었던 「페론」은 취임 10개월도 못돼 심장병으로 타계했다.
그는 이미 28년 전에 군사 「쿠데타」에 참가, 대통령에 취임했었다. 그후 역「쿠데타」로 쫓겨나 18년 동안의 망명 생활을 겪은 뒤에 다시 권토중래한 불사조와 같은 존재였다. 더구나 대통령 유고시에 자동적으로 그 권한을 위임받는 부통령직에 자신의 부인을 앉힌 「카리스마」의 정치인이었다. 이런 일들은 「아르헨티나」인 아닌 외국인의 상식으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그 나라에선 조금도 기이하지 않는 현실로 받아들여졌었다.
이제 그 주인공의 타계로 「페론」의 신화는 어떻게 변질될지 또 하나의 흥밋거리가 되었다. 그의 권한을 위임받은 부통령이자 부인은 정치인이기에 앞서 미모의 「댄서」로서 시선을 받은 사람이다. 「댄서」라고 정치적 수완이 없으란 법은 없지만, 그런 안이한 기대를 하기엔 「아르헨티나」 내부가 너무도 한가하지 않다.
그것은 바로 「페론」 자신의 정치적 유산이기도 하다. 반대파 정당들은 「페론」의 터무니없는 인기에 눌려 위축·내시화 되어 있고, 국가 재정은 누적된 적자로 빈사 상태에 있다. 따라서 사회 불안은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것은 「아이러니컬」하게도 「페론」의 전기 독재 시대에 파종된 것들이었다. 「페론」은 바로 그와 같은 정치적 과오에 의해 한때 추방되었었으며, 그후 이런 과오들이 제대로 수습되지 못해 「아르헨티나」국민들로 하여금 그를 거듭 맞아들이지 않으면 안되게 만든 것이다. 「페론」은 분명히 그 점에 있어서 신화적인 인물이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이 전개한 「부조리의 정치」를 재집권의 명분으로 유감없이 이용하는 기묘한 정치술을 구사했기 때문이다.
정치 후진국의 비극은 바로 이런데에 있는 것 같다. 「페론」은 그런 의식적인 약점을 들여다보며 「부부 집권」과 같은 「희극적 정치」를 마음대로 연출할 수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이후의 「아르헨티나」이다. 「페론」의 지지파들은 그 내부에서 노소로, 좌우로 갈려 분파 항쟁을 거듭해왔다. 「페론」이 망명을 끝내고, 대통령에 출마하기 위해 귀국했을 무렵에도 그들은 서로 총격, 시가전을 벌여 유혈 사태를 빚었었다.
부군의 후광을 잃은 「이사벨」 부통령이 과연 그들의 좌충우돌을 억제하고 조정할 수 있는 실력이 있을지는 궁금하다. 지난번 대통령 선거 당시 부부가 나란히 서 있는 선거 「포스터」에서 「이사벨」 부인의 안면에 흙탕물을 끼얹고, 낙서를 하고 또 찢어버리는 일들이 많았던 것은 그런 회의를 더욱 깊게 한다. 어느 나라 국민이든 미지의 환상을 오래도록 갖고있고 싶어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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