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북인사와 적십자국제위의 중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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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같은 민족간의 문제를 같은 동족끼리 해결하지 못하고 국외자의 개입을 빌어야만 하게된 현실을 우리는 우선 같은 동족으로서 슬퍼한다.
대한적십자사는 최근 적십자국제위원회(ICRC)가 북한적십자중앙회에 발송한 2통의 공한사본을 발표했다. 그에 의하면 국적은 지난 54년부터 73년 3월 31일까지 20년 동안 한국에서 실종되어 현재 북한에 억류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진 4백26명의 소재를 확인하기 위해 국적대표를 북한에 파견할 것을 제의하고 있다.
또한 국적은 같은 날짜로 보낸 다른 공한에서 금년 2월 15일 납북된 한국어부들의 문제에 언급하여 남북간 쌍방의 견해차이가 있기는 하나『그 견해 차이가 어떠한 것이든 간에 투철한 인도주의적 견지에서 보편적으로 채택된 관례에 따라』어부들의 생사여부와 소식을 가족들에게 알려줌으로써 그들의 고통과 근심을 해소시켜줄 것을 촉구했다.
이 공한을 통해서 보건대 국적은 납북인사들 문제에 대하여 단순히 남북 쌍방간의 「메신저」로서만이 아니라, 문제해결의 본격적인 주선자로 나설 뜻이 있음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하루를 천추처럼 애타게 기다리고있는 납북인사들의 가족들의 처지를 생각하고, 남북적십자회담이 사실상 좌초됨으로 해서 최근 남북간에 잠정적인 대학의 통로 마저 막혀버린 현장을 생각하면 적십자 국제위원회가 이 같은 중개의 노를 맡고 나선 데 대해 심심한 사의를 표한다.
그러나 동족문제의 해결을 위해 나서 주는 외부의 호의가 고마우면 고마울수록, 우리는 같은 동족끼리 같은 언어가 통하지 않는 북괴의 비인도적 처사를 더욱 개탄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납북된 민간항공기의 승무원이나 승객, 또는 북한함정에 의해 침몰, 납치된 선원이나 어부들의 생사나 소재를 알아보겠다는 「심인」사업은 정치이전의 인도문제이다. 그리고 이러한 인도문제는 교전중인 적대국가 끼리도 상호 존중하고 있는 것이 국제관례요, 그를 위해서 각국에는 적십자 조직이 있다.
북한에도 적십자중앙회라는 것이 있고 적십자국제위원회에 이 같은 인도주의 정신을 존중할 뜻을 밝히고 있는 이상 그 예외에 속한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기에 우리는 국적제의의 수락을 같은 동족의 이름으로써 특히 북한적십자중앙회에 촉구한다. 남북간의 정치적 견해차가 어떠한 것이든 간에 북한적십자중앙회도 이른바「적십자」란 이름을 얹고 있는 이상 국적의 제의를 수락하는데 주저할 이유는 있을 수 없다.
물론 북한적십자중앙회가 북한정치권력의 조정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민간단체」라고 믿을 정도로 우리가 순진하지는 않다. 그러나 북한당국자 또한 그들이 같은 동족으로서의 피가 통하는 이상 그리고 전세계에 통하는 인도의 언어를 이해 못한다 할 수 없는 이상, 국적의 제의를 거부할 아무런 이유가 있을 수 없다.
만일 그렇지 못하다면 북한당국은 스스로 인간의 피가 통하지 않는 허수아비(괴뢰)의 집단임을 세계에 폭로하는 결과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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