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메달 따고 뺨 맞던 리나 … 중국 엘리트 체육 흔들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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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리나

테니스 선수 리나(李娜·31·세계랭킹 3위)의 호주오픈 여자 단식 우승(지난달 25일)이 중국인들을 열광시키며 중국의 국가 주도 엘리트 체육의 한계에 대한 논란으로 이어지고 있다.

 리나는 지난달 말 호주오픈이 끝나고 조용히 귀국했다. 대대적 환영 행사를 원한 정부의 뜻과 달리 고향 후베이(湖北)성 우한(武漢)에서 가족과 조용히 설을 지낸 것으로 전해졌다. 그럼에도 스포츠 영웅에 대한 여론의 관심은 뜨겁다. 단지 우승했기 때문이 아니다. 그의 눈부신 성과가 국가 시스템 밖에서 자신의 의지를 통해 이뤄졌기 때문이다.

 중국이 스포츠 강국이 된 이면엔 국가가 관리하는 엘리트 스포츠 교육이 있다. 리나도 그중 하나였다. 다섯 살 때 배드민턴 선수로 발탁됐지만 본인의 뜻과 관계없이 테니스로 종목을 바꿨다. 여느 선수들처럼 꽉 짜인 일정으로 혹독한 훈련을 받던 그는 2002년 처음 대표팀을 떠났다. 대학에 다니기 위해서라고 했지만 강압적인 시스템을 벗어나기 위해서라는 보도가 잇따랐다. 잠시 대표팀에 복귀했지만 2008년 다시 박차고 나갔다. 직접 코치를 고용했고 훈련 일정을 짰다. 다른 선수들이 수입의 65%를 중국테니스연맹에 내는 데 반해 리나는 우승 상금의 약 8%, 광고 등 수입의 12%만 연맹에 주고 나머지를 자신이 차지했다. ‘플라잉 솔로(flying solo)’라 부르는 독자 활동에 나선 것이다. 이 때문에 중국 정부와 언론의 냉대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동양인 최초로 프랑스오픈(2010년)과 호주오픈에서 우승하자 양상이 달라졌다. 특히 지극히 개인적인 리나의 우승 소감에 대한 대중의 반응은 뜨겁다. 리나는 우승 직후 “나를 부자로 만들어 준 에이전트와 훈련을 함께 해 준 남편에게 감사한다”고 했다. 조국에 영광을 돌린다는 식의 언급은 없었다. 선수를 통제하고 수입의 상당 부분을 떼 가던 국가에 날리는 돌직구인 셈이다.

 이에 대해 중국 네티즌들은 웨이보에 “개인의 의지가 있다면 국가의 시스템 없이도 성과를 낼 수 있다는 걸 리나가 증명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한 리나에게 공감한 것이다. “리나의 우승이 곧 중국의 승리”라는 관영 언론의 분석은 비판받고 있다. “대표팀 경험이 없었다면 리나의 성공은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신화통신 보도에 대해 네티즌들은 “맞다. 정부 지원이 없었다면 리나는 절대 서른한 살에 챔피언이 될 수 없었다. 스물한 살에 우승했을 것”이라고 비꼬았다.

 논쟁은 지난 주말 한 동영상이 공개되면서 더 뜨거워졌다. 동영상엔 2001년 중국 체전에서 후베이성 대표로 동메달을 딴 리나가 관료에게 뺨을 맞는 장면이 담겨 있다. 당시 리나는 최소 은메달을 딸 것으로 예상됐다. 이 장면이 인터넷을 통해 퍼지자 한 칼럼니스트는 “중국이 리나의 뺨을 때렸다면 이젠 리나가 구닥다리 시스템의 뺨을 칠 때”라고 썼다.

 리나는 이에 대해 침묵하고 있지만 그는 이미 자신의 생각을 수차례 밝혔다. 2011년 호주오픈 중엔 “내가 국가를 위해 뛴다고 말하지 마라. 나는 날 위해 테니스를 친다”고 말했다. 지난해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도 “사람들은 내가 중국을 대표한다고 말하지만, 너무 부담스럽다. 나는 그저 운동선수이고 나 자신만을 대표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홍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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