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정치」와「경제」의 상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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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어떤 점에선 선진 해양국과 이해를 같이하고 또 어떤 점에선 개발도상국들과 동조해야 하는 미묘한 처지이기 때문에 영해 및 경제수성 범위에 대한 우리 정부의 입장을 미리 공식적으로 밝히지 못한다.
현지에 가서 각국의 움직임과 우리 대표단의 막후교섭 성과를 보아 구체적인 정부 복안을 내놓을 것이다.』「카라카스」UN해양법회의에서 우리정부는 경제적 이해와 정치적 득실을 저울질해야 할만큼 단선적이지 못하다는 외무부 당국자의 말이다.
그러나 우리정부가 세계적인 추세를 좇아 영해=12해리, 경제수역=2백 해리 안을 받아들일 것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관측이다.
다만 영해 내의「무해통행」(innocent passage), 경제수역에서의 자유통행(free-transit) 권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부대조건을 붙여 받아들일 것이라는 얘기다.
영해 12해리 안엔 정부가 반대할 아무런 이유가 없으나 개발도상국이 반대하고 선진해양국들이 강력히 요구하는 해협에서의 자유통행권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가 문제로 제기되어있다. 세계 제5위의 해양어업 국인 우리로서는 경제수역 2백 해리를 받아들일 경우 대부분의 어장을 잃는 결과가 되는 것이어서 경제수역의 확대가 결코 바람직하지는 않은 입장이다.
그러나 한국도 가입된 77「그룹」(실제는 96국으로 늘었지만)을 비롯해서 90국 이상이 경제수역 2백 해리를 지지하고 있고 미·소등 선진국도 해협에서의 자유통행권 보장을 전제로 이에 찬성하고 있다.
이러한 대세 속에서 경제수역 2백 해리를 반대한다는 것은 국제적인 고립을 초래할 우려가 없지 않기 때문에 일단 다수 표에 따라간다는 속셈인 것 같다. 그리고 나서 연안 국가별로 어업교섭을 벌여 우리의 기존 원양어장을 확보하고 입어료의 혜택을 받도록 하는 것이 현실전략으로 옳다는 판단을 내리고 있는 것 같다.
한국의 입장에선 경제수역의 폭이 30해리가 되던 가장 실리가 많다는 것.
이렇게되면 동해에 출어하는 일본근해 어업이 큰 타격을 받고 우리 원양어업은 54% 감산하게 된다는 분석이다.
경제수역 2백 해리가 채택될 경우 현재 공해의 40% 이상이 연안국의 관할권속에 들어가며 그러면 우리나라 원양어업은 약80%의 감산을 면치 못한다는 수산청의 집계다(일본은 56%). 원양 어업에는 타격을 받게 되지만 사실상 경제수역 2백 해리는 한국의 연해관할과는 큰 관련이 없다.
우리 연안으로부터 2백 해리를 긋는다면 중국의 산동반도와 일본의「규우슈」지방까지 덮게되며 일본이나 중국의 경제수역도 우리나라 육지일부 내지 연안을 포함하게되어 경제수역 2백 해리 안이 통과된다 하더라도 적용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한·중·일 간에는 중간선 획정 또는 어떤 다른 방법으로 해결되어야 한다.
영해 12해리가 채택될 경우 한·일간의 영해로 흡수될 대한해협에서의 통행문제가 현실문제로 제기된다.
이번 회의에서 선진 강대국과 개발도상 연안국들 사이에 가장 예리한 초점이 되고 있는 것이 바로 영해로 흡수될 국제해협(1백16개)에서의 통행권 문제다.
특히 대서양과 지중해를 잇는「지브롤터」·「페르샤」만과 인도양을 잇는「호르무즈」,인도양과 남지나해를 잇는「말라카」해협 등 12개 국제해협은 미·소 양대국의 세력균형마저 뒤바꿔놓을 만큼 중요한 요충. 따라서 이들 강대국들은 어떤 일이 있더라도 국제해협에서의 자유통행권만은 확보해야겠다는 입장이며 그러한 해협 중에 대한해협이 포함되어 있다.
개발도상국들은 영해 안에서의 무해통과(무해여부는 연안국이 판정)에 관한 연안국의 권리마저 강화하려는 입장이며 한국은 안보·국방 및 한·미 상호방위조약의 이행 등 여러 가지 특수한 관계로「구체적 기준이 명시되는 무해통과」를 내세울 듯 싶다.
특히 폭이 12해리인 제주해협은 우리의 영해가 되며 유일한 항로도 아니라는 이유를 들어 국제해협의 적용을 배제하겠다는 방침이다.
영해 12해리, 경제수역 2백 해리 안이 채택될 경우 쌍방 간 전관수역을 12해리씩 설정한 한·일 어업협정은 폐기 또는 전면 수정될 수밖에 없다.
대륙붕에 대해선 ①경제수역 2백 해리와 그 범위를 맞추자는 주장(2백 해리) ②수심 2백m 또는 해안으로부터 40해리까지, 그리고 수심 5백m 또는 해안으로부터 1백 해리까지로 하자는 주장 ③2백 해리를 넘는 대륙사면까지로 하자는 3가지 주장이 나와 있으나 한국은 일본과 대륙붕 협정을 이미 맺었고(아직 비준되지 않았지만) 황해와 남지나해 대륙붕은 중공 또 는 자유중국과 타결 지을 문제로 압축된다. <끝><이제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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