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심상일<문학평론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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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어느 세대나 그들 나름의 독자적인 감정의 양식이 있지 않을까 한다. 가령 한 사나이가 사당에 방화를 했을 경우, 어떤 연령층은 신이 날것이며 다른 층은 어리둥절하거나 그러한 사나이 혹은 세태를 개탄, 분격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신처럼 무관심하리라. 이 달에는 세대가 서로 다른 작중인물의 그러한 반응을 검토하는데 역점을 둬보려 한다.
유주현씨의 『파경』(현대문학)에는 70대의 할아버지, 그 아들인 50대의 김문현, 또 그 아들인 30대의 도식이 등장하는데 도식의 도미유학 가부를 둘러싸고 각 세대사이에 갈등이 생긴다. 충절공의 18대 손임을 영광으로 삼고있는 이 가계는 뜰 안에 사당을 모시고 있으며 종손으로서 사당을 지켜야한다는 이유로 할아버지는 손자의 도미유학을 한사코 반대한다. 50대는 사당의 존폐문제보다 현재 집의 자연환경이 고층건물 때문에 붕괴돼가고 있는 것이 더욱 두렵다. 30대의 도식에겐 이런 문제 따위는 관심이 없다.
사당이나 자연보존 같은 것은 자기 의지(도미유학)를 성취한 뒤의 문제란 것이다. 이를테면 합리주의자다. 결말은 50대가 30대의 소원을 고취하면서 유교도덕을 상징하고 있는 사당에 불이 난 것으로 처리하고 있는데 이 작품은 각 세대의 가치관의 차이에 따른 갈등을 보여준 한 표본이 되고있다.
박용숙씨의 『떡치던 날』(월간중앙)에도 50대쯤의 노부모, 그리고 30대의 아들부부가 등장하고 있지만, 집(가정)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다. 얘기는 어느 화창한 봄 날, 젊은 내외의 애정이 뚝뚝 떨어지는 정경묘사부터 아무렇지 않게 시작되는 것인데 그러나 그들의 행복은 결국 노부모의 그 동안의 업적 위에 서 있었다. 자부는 시부모가 마땅치 않다. 아들은 그러한 아내에게 타이른다.
기성세대가 남겨 놓은 유산 위에 새로운 세대가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셈인데, 이 작품은 수직적 윤리를 재확인해 보인 것으로 어떤 인간관계나 문화현상은 반드시 역사적 배경이나 전통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
유승규씨의 『지나간 얘기』(현대문학)는 여러 가지 독법이 있겠는데, 이렇게 해석하면 발상동기가 명확해질 줄 안다. 그러니까 기구한 얼굴에 해괴한 웃음을 터뜨리는 <흉터녀석>이 눈만 뜨면 치고 다니는 북은 정녕 신문고가 아니었을까. 녀석이 북을 치지 않고 못 배기는 이유는 가슴이 답답해서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자기해명을 하고 있는 것인데 이 사나이는 원통하여 누구에겐가 호소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무엇이 원통했는가.
녀석의 모친은 6·25때 타죽었고 형제의 한 놈은 국군에, 한 녀석은 인민군에 가서 죽었을 뿐만 아니라 안면방해를 이유로 북을 못 치게 하는, 그러니까 호소조차도 못하게 하는 그의 조건이 원통했던 것이다. 만일 그렇게 해석할 수 있다면 이 작품은 호소조차도 봉쇄하는 어떤 강권에 대한 「프러테스트」가 되리라.
김국태씨의 『움딸』(현대문학)은 사랑하는 아내를 잃고 늙은 모친을 모시고 쓸쓸히 살면서 가끔 조카에게 술대접을 받는 50대를 그린다. 자식이 하나있긴 하나 미국에서 결혼한 뒤 아버지는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이 작품은 붕괴해가고 있는 50대의 고독과 애환을 담담하게 그린 작품이다.
박완서씨의 『닮은 방들』(월간중앙)은 도시 생활인의 강박현상을 섬세한 문장으로 분석해 보인 가작의 하나이다.
하찮은 초인종 소리가 끔찍할이만큼 주인공의 감정을 사로잡고 해방시켜주지 않는다. 그네의 일상적 생활은 겉보기엔 평온 무사하다.
그러나 그네의 의식내부의 감정이나 관념 따위는 자기 외지와는 달리 강박관념이 독사처럼 도사리고 있었다. 그네는 또 기계의 부품처럼 서로 닮아 보이는 일체의 것에 공포감을 느끼면서 이 여자는 나날이 따분한 것이다. 어느 날 간통을 해보려는 충동을 느끼고 간음을 해본다. 그러나 사나이는 허약한 주제에 가학적이려는 연기를 하고 있었다.
사나이도 강박관념에 고착돼 있는 셈인데 그것은 다만 인간의 감정을 공중변소처럼 타락시키고 있었을 따름인 것이다. 감정교육이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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