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명의 존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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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31일자 신문의 사회면을 펼쳐 본다. 독자를 침울하게 만드는 일련의 충격적인 사건들에 대한 보도로 메워져 있다.
우선 지난 28일에 강원도 정암탄광에서 일어났던 낙반사고의 후문이 보도되고 있다. 빈번한 화약발파로 인하여 생긴 암벽의 균열에서 누수가 있음을 보고 사고발생이 있기 전에 이미 수차에 걸쳐 광부들이 적절한 보안조치가 있기를 요청해 왔다. 그러나 이는 묵살되어왔다는 것이다. 금년 들어 이미 51명의 사망자와 1천3백여명의 부상자가 광산사고에서 나왔다. 이렇게 광부들의 끔찍한 위험부담률은 광주와 감독청의 관심이 좀더 깊었더라면 얼마든지 경감시킬 수도 있었을 것이 분명하다.
보도된 바에 의하면 이번 사고로 희생된 광부에 대하여 사고수습 대책위는 근로기준법에 따라 1인당 최저 2백40만원에서 최고 6백10만원을 지급하기로 했다. 광산의 안전도에 대한 광주의 무관심 및 감독청의 감독 소홀히 빚어낸 재해의 희생자들에 대한 보상이 고작 2, 3백만 원에 불과하다는 것은 뭔가 생명의 가치에 대한 평가기준이 우리 나라에서 얼마나 낮은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것이라 하겠다.
또 하나의 기사가 있다. 보사부는 일부 식품업계가 유리병 값을 아끼려고 독극물을 담았던 빈 병을 식품용기로 재사용 함으로써 식품안전관리에 위협을 주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 냈다. 당국에서는 유독 물질 용기를 식품용기로 사용하는 행위를 규제할 법적 근거가 없다고 밝히고 이에 대한 보완을 다짐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보완작업이 언제 끝나는지는 분명치 않으며, 또 법적 보완으로 과연 얼마나 국민보건을 해치는 악덕상행위가 단속될 수 있을지의 보장도 사실은 없는 것이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지난 30일 대전에서 어느 산모가 조산한 태아를 병원에 유기하고 행방을 감추자 이 태아를 쓰레기통에 버려 죽인 뒤에 암매장한 의사와 간호원이 구속되었다는 기사였다.
이 모두가 31일 단 하루의 사회면에 나타난 기사들이다. 신문 사회면이란 여러모로 사회상의 가장 정직한 반사경이라고 본다면 이상과 같은 일련의 기사들은 물질우위의 풍조에 눌려 끔찍스러우리만큼 인명의 존귀성 내지는 인간의 존엄성이 부정된 채 황폐되어 가는 사회의 단면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고 여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는 어디를 가나「번영」이 논의되고 고도성장이 주장되고 있는 「오늘」속에서 살고 있다. 그리하여 마치 경제적 번영이 참다운 번영을 의미하고, 오늘의 충족이 바로 내일의 행복과 직결되는 양 착각하고 있다. 그리하여 오늘의 물질적 번영이 내일의 정신적 황폐를 결과한다는 사실에 누구나 다 눈감아 버리고 있는 듯이 보인다. 그렇게 밖에 어길 수 없을 만큼 누구나가 방일한 물질적 욕구충족에만 신경을 쓰고 있는 오늘의 세태인 것이다.
그렇다고 전혀 기망적인 것은 아니다. 같은 날 기사에 진주에서 4세의 유아를 치어 죽인 뺑소니「택시」운전사가 자살한 사건이 있었다. 아직은 양심이 사람들의 마음속에 살아 있다고 봐야 옳다. 그렇게 믿고 싶기도 하다.
양심이 오늘의 병든 사회를 바로 잡아 줄 수 있는 다시없는 기중기라 여겨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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