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저&피플] 사진작가 현철수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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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의 낯선 곳으로 떠나는 여행은 상상만으로도 늘 마음을 부풀게 한다.

30여년간 1백20개국을 돌아다닌 이가 있다면, 그는 부러워할 만한 사람임에 틀림없다. 사진작가 현철수(玄澈洙.66.경기도 고양시 일산구 덕이동.사진)씨. 최근 세계 91개국의 경관.풍물 사진 4천6백여컷을 담아 '현철수의 사진 세계 일주'라는 이름의 CD롬 46장을 펴냈다.

"1970년 일본에 간 게 첫 외국 여행이었어요. 하루 출.입국자가 10명도 안되다 보니 명단이 신문에 실리던 시절이었죠. 당시는 외국에 나갈 때마다 여권을 새로 만들어야 했어요."

사진과 전혀 관련 없는 일을 하던 그는 20대 중반이던 61년 회사 후배에게서 우연히 사진을 배우게 됐다. 이를 계기로 사진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몇년 뒤 '사진 찍는 부업을 할 수 있도록 일주일 중 사흘만 근무한다'는 조건을 달아 법률사무소로 직장을 옮겼다. 부업이란 법조계 전문 주간지인 '법률신문'에 실릴 사진을 촬영하는 것이었다.

70년의 첫 나들이는 일본에서 열리는 '국제 변호사 협회 정기 총회'에 법조인들이 참석할 때 법률신문 기자 자격으로 동행한 것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외국 여행이 이제는 1백2회에 이른다. 80년대 후반 해외여행이 자유화되기 전까지는 출국 허가를 받을 때마다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혼자 외국을 돌아다니며 별의별 일을 겪었다. 그리스에서 수염 기른 수도사들을 클로즈업해 찍었다가 수도사들의 거센 항의를 받고 필름을 내준 적도 있다. 90년대 초반에는 남태평양 팔라우 공화국의 한 무인도에서 현지 불량배들에게 카메라를 빼앗기는 일도 당했다.

"불량배들이 사진기를 가져가면서 미안했던지 커다란 조개를 하나 주고 가더라구요. 길이가 한 50㎝ 정도 되는데, 알고보니 소장품으로서 가치가 엄청난 희귀 조개더라구요. '자이언트 쉘'이라고 하는 데 해양 박물관 같은 곳에서나 볼 수 있죠."

1993년 법률사무소를 그만둘 때까지 봉급을 쪼개고, 사진.기행문을 각종 매체에 기고한 돈을 보태 여행 경비를 마련했다.

"초기에는 아내에게 욕을 참 많이 들었어요. 전세 보증금 모아 놓은 것을 싹 빼서 외국으로 나갔으니까요. 요즘에 와서야 비로소 이해해줘요. '사진 안 찍었으면 지금쯤 파고다 공원에서 장기를 두고 있을 것 아니냐'면서요."

현씨는 "수십년 간 찍어온 필름이 조금씩 변질되는 것이 안타까워 CD롬을 제작했다"면서 " 많은 분들이 제 사진을 보고 해외 여행지에 대한 이해를 넓힐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성시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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