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의가 마비되어버린 세태인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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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20년간이나 선교사 생활을 하고 최근 귀국한 어느 외국인 주교는 우리 나라를「효의 고장」이라고 칭송하는 고별사를 남기고 떠났다. 유교에 바탕을 둔 충절과 효도를 무엇보다도 큰 한국의 자랑으로 꼽겠다는 것이었다.
왕조사회의 몰락 후 전통적인 충절은 근대국가에서 그 대상이나 내용이 변 용될 수밖에 없다손 치더라도 효도를 우리 사회의 기본적인 덕목으로 삼는 가치규범에는 변화가 있을 수 없다. 효란 시간과 역사를 초월해 있는 천륜이오, 인륜이라 믿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것을 스스로도 자랑으로 삼아왔다.
그러나 요즈음의 세태인심은 이 같은 우리들의 고유한 자랑을 낯을 들고 말하기가 어렵게 돼가고 있는 것만 같다.
술에 취해 아버지에게 행패를 부리는 자식이 있는가 하면 그 자식을 때려서 숨지게 한 아버지가 있다. 10여세나 나이 어린 제자와 정을 통한 여교사가 있는가 하면, 의문의 변사를 한 그 여교사 집을 찾아가 마구 칼을 휘둘러 살인을 한 10대가 있다.
비록 자식을 때려 치사케 한 아버지에게 법정에선 무죄가 선고되었다고 하더라도 거기에는 법의 문죄에 앞서는 또 다른 문죄가 남아 있다. 나이 어린 제자와 정을 통한 여교사는 이미 타계해버렸고 살인을 한 그 제자 또한 미성년이라 다같이 법의 엄한 단죄를 받을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그들이 받아야할 또 다른 심판은 남아있다. 윤리의 문 죄요, 양심의 심판이다.
그들은 우리가 가장 기본적인 윤리규범으로 삼고있는 부자의 친애며 부부의 분별이며 장유의 유서를 어긴 죄를 저질렀다. 천륜과 인륜을 무너뜨리고 뒤범벅으로 만들어버린 대죄를 지은 것이다. 도대체 우리의 세태인심이 어째서 이 모양 이 꼴로 변해버렸다는 말인가. 한 마디로 말해서 도덕적 감각이 마비되어버린 듯한 세상에 우리는 지금 살고 있다. 인간으로 있는 한 그의 더운피처럼 식어서는 아니 될 윤리적 타서가 메말라가고 있는 것이다. 한심하고 전율할 일이다.
이 같은 세상의 책임은 어디에 있는가. 사회의 부조리에 있고 수신교육의 부재에 있다.
그렇다면 이처럼 마비되어 가는 도덕적 감각을 다시 일깨우고 메말라 가는 윤리적 정서를 다시 적셔 줄 수 있는 길은 무엇인가. 전범을 보이는 길이다. 도의적인 훈육에서 가장 강력한 설득력을 줄 수 있는 것은 바로 인격적인 실례이다. 강제로써는 안 된다.
마치 사람의 심미적인 감각이 아름다운 것, 보다 아름다운 것을 자꾸만 봄으로써 발전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람의 도덕적 감각, 윤리적 정서도 참된 것, 깨끗한 것, 훌륭한 것, 착한 것을 자꾸 보게 됨으로써 발전하는 법이다.
결국 참된 윤리확립을 위한 도의교육의 지름길은 깨끗하고 맑은 정치를 실천하고, 깨끗하고 맑은 사회를 건설하고, 깨끗하고 맑은 가정을 꾸미고, 깨끗하고 맑은 교육을 하는 것이다. 정치가는 국민에게, 웃 사람은 아랫사람에게, 아비는 자식에게, 남편은 아내에게, 스승은 제자에게 거짓말 아니하고 뒤가 구린 짓을 아니하는 시범을 하는 것이 바로 그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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