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낸 개인정보 사들여 100배 비싼 값으로 되팔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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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개인정보가 불법 유통되는 핵심엔 금융회사의 고객정보를 빼내 대출모집인에게 파는 기업형 중개업자가 있다. 이들은 금융회사 직원과 접촉해 정보를 빼내거나 해킹한 자료를 수집한다. 이런 자료를 모으고 정리해 고급 정보로 만드는 역할을 한다. 고객정보는 이런 가공 과정을 거쳐 100배 이상 몸값이 뛰기도 한다.

 이번 카드사 고객정보 유출 사건이 대표적인 경우다. 3개 카드사의 고객정보 1억400만 건을 빼낸 신용정보업체 직원 박모(39·구속기소)씨에게 접근한 것은 대출중개업자 조모(36·구속기소)씨였다. 조씨는 박씨에게 두 차례에 걸쳐 1650만원을 주고 고객정보 7800만 건을 샀다. 사실상 국민 전체의 개인정보를 얻는 데 건당 0.21원이 들었다. 조씨는 이 중 농협카드의 정보 100만 건을 2300만원(건당 23원)에 대출영업을 하는 이모씨에게 팔았다. 정리되지 않은 원본 데이터 가운데 주민번호와 카드번호 등 핵심정보만 골라 모은 대가로 100배 이상의 가격을 받은 것이다.

 조씨처럼 본업(대출영업) 외에 고객정보 판매를 부업으로 하는 대출중개업자는 적지 않을 것으로 추정된다. 8년째 대출모집을 하고 있는 김모(40)씨는 “텔레마케팅(TM) 조직이 있는 중개업소들이 고객 데이터데이스(DB)를 빼내고 이를 매매하며 시장이 형성됐다. 이들이 해킹으로 얻는 대출고객의 정보까지 취합한다”고 증언했다. 그는 “대형업체의 경우 대부분 금융회사에 자신의 사람을 일하게 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일종의 ‘스파이’를 금융회사에 심어 계획적이고 조직적으로 정보를 빼낸다는 것이다.

 일선 경찰서 지능팀 소속 수사관은 “큰 금융회사의 고객정보는 해킹을 하기가 어려워 대부분 내부 직원을 통해 흘러나온다. 대부업체를 운영하는 사람이나 대출영업을 하는 사람들 인맥을 형성하면서 일종의 암시장 같은 것이 형성돼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도 개인정보의 불법유통을 차단하는 데 힘을 쏟기로 했다. 검찰과 경찰은 불법적으로 고객정보를 유통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무관용 원칙으로 대응하고 법정 최고형을 구형(징역 5년 또는 벌금 5000만원)하기로 했다. 신제윤 금융위원장도 28일 관계부처 합동점검 회의를 한 자리에서 “조직적으로 개인정보를 수집하고 유통하는 ‘기업형’ 불법 행위자를 집중 단속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금융감독원은 정보가 유출된 3개 카드사 이외에 신한·현대·삼성·비씨·하나SK·우리카드에 대해서도 현장검사를 하기로 했다. 또 3000여 개의 전 금융회사에 대해서는 자체적으로 개인정보 이용과 보안에 문제가 없는지 점검하도록 했다.

박유미·이지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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