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밥을 못 먹으니까 젖이 안나오고 보내신 분유는 꼭지가 없어 못 먹입니다"|북송된 일본인 처들, 재일 가족에 애한 편지|동경 일본인 처 왕래 실현본부 8통 공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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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경=박동순 특파원】북송교포를 따라 북괴에 간 일본인 처들이 『자유를 박탈당한 채 강제노동에 쫓기는 비참한 생활을 하고있다』는 처절한 내용을 엿볼 수 있는 8통의 편지가 일본에서 처음으로 공개되어 충격을 주고 있는가하면 이에 당황한 조총련이 「일본인 처 자유왕래실현운동본부」에 협박전화를 걸어오는 등 방해공작을 대대적으로 펴고있다.
일본인 처 자유왕래실현운동본부 (책임자 「이께다· 후미고」)가 북송일본인 처 가족들로부터 수집한 8통의 편지에 따르면 이들은 한결같이 부모형제의 간곡한 만류를 뿌리치고 북한으로 떠난 것을 후회하고 있으며 고집을 피워 염치가 없으나 너무나 사정이 딱해 부모형제의 도움을 청하지 않을 수 없다고 눈물겹게 호소하고 있다. 이 편지들은 북괴당국의 검열을 두려워했기 때문인지 편지 앞머리부분에 김일성과 북괴를 찬양하는 문구를 늘어놓은 다음 뒷부분에 가서야 겨우 현지의 실정을 조심스럽게 전하고 있으며 그래도 하고싶은 말을 못다 한다는 안타까움을 간접적인 표현으로 나타내고 『잘 이해하면서 읽어달라』고 당부하고 있다. 이들 북송일본인들은 1959년부터 15년간 북송된 9만1천여 명에 달하는 재일교포 가운데 남편을 따라 북한으로 간 6천여 명. 운동본부 책임자로서 언니를 1960년에 북송 당한 채 지금까지 한통의 편지도 받지 못했다는 「이께다」여사는 취재차 전화를 건 기자에게 『최근에 잇달아 협박전화가 결려 오고 있다』면서 『북괴를 자극, 귀환교섭에 영향을 줄 염려가 있다』는 이유로 기자와 만나는 것을 완곡히 거절했으며 북한이 이 문제가 표면화하지 않도록 갖가지 공작을 하고있음을 비쳤다. 일본의 일부 언론관계자는 『자진해서 가놓고 이제와서 무슨 소리냐』는 냉담한 반응을 보였으나 북괴의 선전을 그대로 보도, 실정을 잘못 전한 점은 잊고 있었다. 다음은 북에서 온 편지들의 요지.
▲「다께오」의 어머니(일본인 처)가 동생 「유끼에」에게(제1신)=(전략) 자청해서 걸어온 험한 길이나 살아있는 한 들어주기를 바랐던 태산같이 많은 얘기로 터질 것 같던 가슴이「유끼에」의 편지를 받고서 풀렸다.… 「유끼에」가 여기를 방문한다니 실현이 된다면 기쁜 일이지만 아마 어려울 것이다. 「히로에」는 자유롭게 산몸이라 아무 것도 모르는 것이 무리가 아니나 이곳의 현실은 지극히 가혹하다.

<조미료 받고 얼마나 기쁜지>
일본에서 두부 한모가 60「엥」으로 올랐다는 얘기지만 나는 이곳에 온 이후로 두부를 본적이 없다. 어머니가 만들어 주시던 오징어회 생각을 할때가 많다. 생선을 본 일이 없어서 「칼로리」를 생각해서 영양을 따질 수가 없는 형편이다. 난생처음 겪는 식생활을 하고있다.「히로에」가 보내준 「아지노모도」(주·조미료)를 받고 모두 얼마나 기뻐했는지 모른다.
「히로에」가 애써보낸 돈은 아직 소식이 없는데 3개월 이상 걸릴 때가 있다고는 하나 혹시 모르니 영수증을 잘 보관하도록….

<보낸 옷들로 생필품 바꿔>
일전 보내준 돈도 여기선 별로 가치가 없다. 물자가 부족하기 때문에 물건을 살수가 없으니 돈보다는 시계를 보내주면 좋겠다. 나도 만55세 생일까지 일할 의무가 있기 때문에 열심히 일하고는 있으나 최근에는 자신이 없어졌다.
「히로에」에게 할 얘기가 많으나 쓸 수가 없다. 「기미꼬」도 매일 병원에 나가고 있는데 아이를 셋이나 데리고 일을 하자니 여간 힘들지가 않은 것 같다.
▲동제2신=보내준 의복은 모두 잘 받았다.
검은 반소매 「샤쓰」는 「에이끼찌」에게 잘 어울리고 양복도 잘 맞는다. 모두가 처음 입는 것이라 몹시 기쁜 것 같다. 이제는 바지도 깁지 앉은 것을 입을 수 있게됐다.
나하고 「기미꼬」한테 「테토론」「네커치프」를 보내주어서 정말 고맙다. 이것으로 필요한 물건들을 바꿀 수 있게됐다.
「기미꼬」는 한달에 몇 차례씩 일직을 하는 등 매일 매일을 바쁘게 일한 과로 때문인지 위경련이 자주일어나 고생을 하고있다. (후략)
▲「사찌꼬」로부터 언니에게(67년2월22일)=…언니가 동경에서 필요 없게 된 물건을 귀찮더라도 이곳으로 보내주면 도움이 되겠읍니다.
○○(한글로 썼음) 아버지는 자주 출장을 가는데 팔목시계가 없어 불편하니 아무 것이라도 1개만 부탁합니다.
어머니와 언니들을 만나게 될 날을 고대하고 있습니다. 쌀을 못 먹으니까 젖이 안나옵니다. 보내주신 우유는 잘 받았으나 우유병 젖꼭지가 없어 난처합니다. 우동과 생선을 꼭 한번 먹어보고 싶다고 했던 편지를 잘 새겨서 읽어 주십시오. (후략)

<동봉한 「사카린」 안보여>
▲「모도꼬」(소자)로부터 언니 「요시꾜」(양자)에게 (69년)=(전략)지난3일에 1년2개월만에 어머니와 언니편지를 받았읍니다. 1백번 이상을 읽으면서 눈물을 줄줄 흘렸습니다…. 그이도 어머니 편지를 보고 눈물을 흘리며 목이 메었읍니다.
몇살이 되어도 부모가 자식 생각하는 마음은 변함이 없는데….
왜 이런 죄를 지었을까하면서 울었읍니다. (중략)
2급품이라도 좋고 몇장이라도 좋으니 「오버」지 하고 담요·털실 좀 보내주실 수 없는지요? 맞벌이하는 언니에게 이런 부탁을 해서 미안합니다.
「아지노모도」3㎏, 「사카린」5㎏을 같이 넣어서 보냈다고 씌어 있는데 도착하지 않았으니 언니가 혹시 잊어버리고 넣지 않은 것이 아닌지요.

<43세에 완전백발입니다.>
▲「야에꼬」로부터 부모님께 (72년12월21일)=(전략) 어느덧 12년이 흘렀으니 부모님도 무척 변하셨겠죠? 저도 이곳에 온 후로 건강이 좋잖아 몸져눕는 일이 많고 그 때문인지 머리칼이 완전히 백발이 됐읍니다. (주=당시연령43세)
올 봄에는 「요시히꼬」를 장가 보내야겠는데 입에 겨우 풀칠할 정도니 도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큰맘을 먹고 어머님 도움을 받고자 펜을 들었습니다.… 1백% 「나일론」으로 머리에 쓰는 「네커치프」3백장만 있으면 어떻게 될 것 같습니다. 가능하다면 「스웨터」하고 두터운 겨울양말도 보내주십시오. 제 병 치료에 쓸 「오일·페니실린」10개, 신장약·간장약, 그리고 위장약도 보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머리염색약하고 「라이스·카레」가루도 조금만 보내주십시오. (후략)

<네커치프로 장가 비용…>
▲「마쓰에」로부터 부모님께(70년2월9일) =보내주신 사진 잘 받았습니다. 저희들도 10년 동안에 달라진 모습을 찍어서 보내 드리고 싶으나 그럴 수가 없읍니다. (중략) 네살짜리 꼬마는 아침부터 밤까지 책만 보는데 그것도 그림책 같은 것이 아니고 공산주의 어쩌고저쩌고 하는 학생들의 흉내만 내고 있읍니다. 여러분이 보내주신 「스웨터」와 양말 덕분에 애들도 추운 겨울을 무사히 지내고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집안에서도 일본말을 쓰는 것이 엄격히 금지돼 있습니다. (후략)

<꼬마 읽을 책도 공산서적뿐>
▲「후지꼬」가 오빠에게=(중략)이대로 가면 집안사정도 앞으로 2∼3년이면 좀 나아질 것 같고 해서 「사부로」도 학업을 중지하고 이 고비를 넘기기 위해 열심히 일하고 있읍니다… 저는 이번에 겨울에 먹을 무웃잎을 모으느라고 무리를 해서 한달째 몸져누워 있읍니다.
오빠가 중심이 되어서 「오오사까」에 사시는 여러분이 「나일론·네커치프」를 형제 한사람이 1백장정도, 「사카린」은 한사람이 5㎏씩만 모아서 보내 주십시오.
귀국 선편에 보내주시면 아주 유리한데 오빠는 조총련간부들과 친하니 가능할 것입니다. (중략)
지나간 일들을 생각하면 인간의 탈을 쓰고서는 이러한 편지를 드릴 수 없다는 것을 잘 압니다마는 사정이 사정인 만큼 넓은 마음으로 부탁을 들어주십시오.

<하루바삐 돌아가게 해주길>
▲「유끼오」(일본인 처의 아들) 숙부 「에미」에게 (73년9월4일)=(전략)저는 지금 ×××도가 조직한 청년돌격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숙부님이 보내주신 물건들 잘 받았읍니다.
어머님도 눈물을 흘리면서 기뻐하고 있습니다. 이것저것 모두가 요긴하게 쓸 수 있는 것들입니다. 올해부터는 숙부님이 보내주신 외투가 있으니 염려 없읍니다.…북한에 있는 일본인이 고향을 다녀올 수 있도록 북한 측 의향을 타진하실 생각이라니 정말로 실현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어머님은 벌써부터 실현된 것처럼 기뻐하시면서 여러가지 계획을 세우고 있읍니다.
이곳에 있는 일본인들이 하루빨리 고향에 돌아갈 수 있게되기를 충심으로 빕니다. (이 편지에 나온 이름들은 본인들을 위해 전부 가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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