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새 들어올라 양계장 환기구에 그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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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발이 묶여 계란 3만여 개를 내보내지 못하고 쌓아놨습니다.”

 경기·충청지역에 스탠드스틸(Standstill·일시이동중지) 조치가 발동된 27일 오전의 상황을 황성준(52)씨는 이렇게 전했다. 그는 경기도 평택시 청북면 고잔리에서 닭 7만5000마리를 키우는 축산 농부. 통제 때문에 양계장 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입구에서 전화한 본지 기자에게 황씨는 “출하하지 못한 달걀이 고잔리 일대 양계장에서만 100만 개에 이른다”고 말했다. 그러나 달걀을 쌓아두는 건 큰 문제가 아니었다. 황씨는 “행여 충남 부여의 닭 농장을 덮친 조류 인플루엔자(AI)가 여기까지 번지지 않을까 걱정이 태산”이라고 말했다.

 스탠드스틸이 발령된 27일 경기 남부의 평택·안성·화성시 닭 농가들은 AI를 막기 위한 소독에 여념이 없었다. 스탠드스틸이 아니더라도 다른 데 갈 생각은 아예 없었던 듯했다. 3개 시를 통틀어 닭 1500여만 마리를 키우는 집산지인 데다 AI가 나온 충남 부여와 지리적으로 멀지 않은 곳이어서 긴장감이 더했다. 황씨는 “1주일에 두 번 하던 축사 소독을 26일부터 매일 두 차례씩 하고, 혹시라도 철새가 들어올까봐 환기구에 촘촘한 그물을 씌웠다”고 했다.

 화성시 정안면에서 고기용 닭 8만 마리를 키우는 최길영(64)씨는 “매일 두세 차례 방역을 하고 있지만 나만 잘한다고 AI를 막을 수 있는 게 아니어서 불안하다”고 말했다. 경기도는 안성·평택·이천·여주 등 충북·충남도와 경계를 대고 있는 지역 8곳 통제소에서 오가는 차량을 집중 소독했다. AI가 충청도에서 경기도로 넘어오지 못하도록 차단막을 치려는 시도였다. 닭에서 AI가 나온 충남 부여군 홍산면 일대에선 이날 닭과 병아리 11만8000여 마리를 살처분했다.

 AI가 처음 발견된 전북도는 28개 버스터미널과 8개 기차역에 소독용 발판을 깔았다. 귀성객들이 AI에 감염된 철새 배설물을 밟아 바이러스를 옮길까봐서다. 또 200여 곳에 귀성객들을 대상으로 철새도래지와 닭·오리 농가 출입을 자제해달라는 현수막을 내걸었다.

평택·화성=임명수 기자, 전주=권철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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