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영등포 김안과병원 앞엔 ‘동양 최대의 안과병원’이란 수식어가 붙는다. 1962년 개원 이래 누적 외래환자 건수가 1200만 건. 지난해만 외래환자 건수가 39만여 건. 수술 건수가 2만3000여 건에 달한다.
부부 병원장 된 김안과병원 김용란 원장
새해 들어 김희수(건양대 총장) 이사장의 둘째 딸인 김용란(52) 건양대 교수가 이 병원 7대 원장으로 취임했다. 신임 김 원장은 “병원의 덩치가 커지면서 순발력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주변에서 들었다”며 “순발력 있게 잘 대처하란 의미로 병원에서 나를 부른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3년 임기를 시작한 김 원장은 병원이 문을 연 1962년에 태어났다. 그의 남편인 김성주 교수도 김안과병원 병원장을 역임한 바 있다. 국내 의료계에선 보기 드문 ‘부부 병원장’ 기록이다.
남편은 김 원장의 연세대 원주의대 1년 선배다. 두 사람의 인연은 남편이 고교 3학년이던 197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신촌에 살던 김 교수는 노량진에 있는 대성학원에 다녔다. 버스를 타고 가면서 ‘김안과’란 버스 정류장을 지나치던 그는 “얼마나 큰 의원(당시 의원)이길래 정류장 이름으로까지 사용된 것일까”라고 궁금해했다고 한다. 이어 “김안과에 딸이 있으면 장가가면 좋겠네”라며 당돌한 생각을 해보기도 했다.
이듬해 의대에 입학한 김 교수는 의예과 1학년 때 유급했다. 하지만 새옹지마(塞翁之馬)라 했던가. 다음해 김용란 원장이 같은 대학에 입학했다. 두 사람은 같은 실습 조였다. 사귀기 시작한 지 2~3년이 지난 본과 3학년 때 김 교수는 상대가 김안과병원 원장의 딸이란 사실을 처음 알게 됐다. 두 사람은 레지던트 2년차 때 결혼했다. 남편은 연세대 신촌세브란스병원에서 일하다 2002년 김안과병원으로 옮겼고 2006~2009년 아내보다 먼저 병원장을 맡았다.
-취임 일성(一聲)이 무엇이었나.
“‘잘 듣겠습니다’였다. 여자 원장이란 장점을 십분 살려 환자들을 더 세심하게 배려하고, 직원들에게 더 따뜻하게 대하고 싶다. 직원들이 행복해야 환자들도 행복해진다고 믿는다.”
-어떻게 직원들을 행복하게 할 생각인가.
“직원들에게 가장 힘든 일이 무엇인지 물어봤다. 입원 환자들에게 주의사항 등 똑같은 얘기를 늘 반복해야 하는 것이 스트레스라고 하더라. 환자들에겐 요점만 설명하도록 하고 세세한 얘기는 성우 목소리로 녹음한 MP3나 헤드셋을 통해 듣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또 직원들에게 점심시간이 기다려지도록 만들고 싶다. 병원 식당에 샐러드 바를 마련해주고 싶다.”
-환자들에겐?
“기다리는 시간을 최대한 줄이는 데 힘쓰겠다. 그동안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해 왔으나 오히려 계속 대기시간이 늘어난 것 같다. 환자들이 병원에서 무료하게 기다리지 않도록 커피숍처럼 진동 벨을 드리거나 병원 곳곳에 TV 모니터를 설치해 자신의 앞에 몇 분의 환자가 대기 중인지를 계속 알려줄 생각이다. 그런데 이거 영업비밀인데….”
-지난해 사상 첫 적자를 봤다고 하던데.
“적자는 아니다. 외래 환자 수가 감소한 것은 사실이다. 안과 분야에서 백내장의 포괄수가 제도가 시작되고 불경기가 겹치면서 병원 경영이 힘들어졌다.”
-환자가 줄면 보통 라식·안검성형 등 건강보험 비(非)급여 시술 비중을 높이던데.
“환자의 눈 건강이 먼저다. 환자가 라식 수술을 원하더라도 검사 뒤 조건이 안 되면 설명해서 돌려보낸다. 라식 수술 대상자를 확정하는 ‘커트라인’이 높다는 뜻이다. 최근 미국 유학 중인 20대 여대생이 우리 병원에서 라식 수술이 가능한지 검사를 받은 적이 있다. 라식이 가능한 눈 상태였지만 출국일이 3주밖에 남지 않아 졸업한 뒤 다시 오라고 권했다. 라식 수술 뒤엔 한 달 이상 눈 상태를 점검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동안 우리 병원은 남아 있는 각막 두께가 320㎛(마이크로미터=1/1000㎜)는 돼야 한다는 기준을 갖고 있었는데 이 때문에 환자를 많이 놓쳤다(웃음). 지금은 라식 수술 대상인지 결정할 때 두께의 개념이 희박해졌고 각막의 모양 등을 중시한다.”
-환자 입장이 돼 본 적이 있나.
“한 달쯤 전에 어깨가 많이 아파 병원 인근의 정형외과를 찾아간 적이 있다. 환자로 진료를 받아보니 ‘이런 부분은 왜 자세히 설명해주지 않지’ ‘시술하는데 왜 손 소독제를 바르지 않지’ 등 문제점들이 눈에 띄었다. 우리 병원 의료진에게도 환자나 보호자의 입장이 돼 자세히 설명해 주도록 당부할 생각이다.”
-김안과병원의 최대 장점은 무엇인가.
“안과 질환에 관한 한 A에서 Z까지 모두 다룬다는 것이다. 약 40명의 안과 전문의가 저(低)시력부터 의안(義眼)·각막이식에 이르기까지 안과의 전 분야를 망라한다. 안과도 전문 분야가 많은데, 다양한 전문의사의 합동 진료를 받을 수 있다.”
-한국인 눈 건강을 위해 조언을 한다면.
“지하철이나 버스 등 흔들리는 곳에선 스마트폰을 보지 않는 게 좋다. PC와 스마트폰은 눈 건강의 적이다. 10년 전에 라식 수술을 받은 30대 중반의 여성 환자를 진료했는데 최근 갑자기 시력이 0.3 정도로 뚝 떨어졌다고 하소연했다. 이유를 캐봤는데 친구들과 3개월간 카카오톡으로 밤새워 가며 ‘애니팡’(모바일 게임)을 한 것이 원인이었다. 겨울방학이 지난 뒤 눈 상태나 시력이 훨씬 나빠져 병원을 찾는 아이들도 많다. 춥다고 집에서만 지내며 야외 활동을 게을리한 탓이다. 히터나 에어컨을 틀면 실내가 건조해지는데 이로 인해 안구건조증은 물론 시력도 나빠질 수 있다. 히터나 에어컨의 열기와 냉기가 가급적 눈높이보다 낮은 쪽을 향하도록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