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세계의 나그네 김찬삼씨|「정글」속의 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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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흡사 작전계획을 짜듯이 정밀한 지도를 펼치고 하루하루의 일정을 면밀히 꾸미면서 하류로 내려가고 있다. 그런데 오늘 저녁은 웬일일까. 지도에 그려져 있는 어떤 마을에 이르러 쉬기로 했던 것인데 해가 지고 어두워져 가건만 강가엔 사람이라곤 그림자도 보이지 않을 뿐 아니라 오막살이집 한 채 띄지 않는다. 나는 적이 불안해졌다. 「커누」에서 하룻밤을 지낼 수 없기 때문이다.

<여차하면 피하기 쉽게>
어쩔 수 없이 통나무배인 「커누」를 강가에 대고 주위를 잘 살펴보았다. 야수들이나 구렁이들이 있는 곳이 아닌지 걱정스럽기 때문이었다. 독사도 물론 무섭지만 「아마존」호랑이인 「자갈」이나 「퓨마」나 또는「아마존」의 상징이라 할 큰 구렁이인 「스쿠리」나 「아나콘다」는 모두 야행성이어서 언제 어디서 달려들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물구렁이인 「스쿠리」가 달려들면 강가의「정글」로 도망하고 또 「퓨마」나 「자갈」이 「정글」에서 달려들면 강 복판으로 쏜살같이 노를 저어 갈 수 있도록 알맞은 곳에 「커누」를 댄 것이다.
분명히 달이 떴을 텐데 두터운 구름으로 가려져서 보이지 않는다. 하늘은 비록 구름에 덮여 있으나 달빛 때문에 아주 캄캄하지는 않아서 「정글」은 그리 어둡지가 않다. 구름이 어서 말끔히 개어 밝기를 기다리며 「정글」을 잘 살피고 있는데 착각 때문일까, 멀리서 야수들이 울부짖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안식의 밤을 노려 약자의 목숨을 빼앗는 강자의 노가다.
「쇼펜하우어」는 어쩌면 이 세계는 악마가 창조한 것과도 같다고 말했는데 이 「정글」에서 야수들이 어진 짐승들을 괴롭히고 있는 것을 보면 혹 그의 관찰이 옳은 지도 모른다.
이런 상념에 잠기다가 나는 깜짝 놀랐다. 도깨비불과도 같이 「아마존」의 독특한 개똥벌레(반딧불)떼가 환히 불을 밝히고 느닷없이 내 앞을 날아가기 때문이다. 창조의 섭리란 참 오묘하다.

<원초적인 무구의 월경>
이 어두운 밤의 「정글」엔 하늘의 찬란한 성좌들처럼 이런 반딧불을 만들어 장식하고 있으니 말이다. 「밤의 나그네」랄까, 「정글」을 쏘다니는 이 개똥벌레 떼들은 하늘의 성좌 못지 않은 「정글의 샹들리에」를 이루고 있지 않은가.
꿈나라에 온 듯하여 무서움이란 아랑곳없이 밤의「정글」의 생태를 살펴보았다. 이윽고 또 수많은 반딧불이 날아갔다. 이 원시림에선 번식이 잘되기 때문에 이렇게 많은 반딧불이 살고 있을 것이다.
반딧불에 넋을 잃고 있다가 야수라도 달려들면 어쩌나 하고 「커누」로 돌아갔다. 오늘따라 온종일 헤매어 고달프기에 관보다도 비좁은 통나무배인 이「커누」에 발랑 누웠다. 얼마 있다가 하늘이 훤해지는가 하더니 구름 틈으로 달이 얼굴을 내미는 것이 아닌가. 나는 벌떡 일어나서 우러러보았다.
이 「아마존」강에서 보는 달은 너무나도 무구해 보였다. 티끌 하나 묻지 않은 그런 처녀성을 지닌 달이다. 「여호와」가 갓 만들어 낸 달이기에 이태백이나 「셀리」의 시며 「베토벤」이나 「드뷔시」의 음악에 그려지기 이전의 원초적인 달이다.
인공위성으로 정복했다고 하더라도 이「아마존」강에서 쳐다보이는 달은 인간에게 정조를 빼앗긴 그런 달이 아니라 초시대적인 달이었다. 그러니까 원시적인「아마존」강 위에 뜬 달이 달의 본체이고 문명적인 세계 위에 뜬 달이 달의 가상인지도 모를 일이 아닌가. 달은 하나지만 어쨌든 「아마존」위에 뜬 달은 새로운 달이었다.
「커누」에 누워서 나는 달과 무언의 대화를 나누었다. 『달은 해가 꿈꾸는 하나의 꿈』이라는 화가 「클레」의 말이 새삼스럽게 느껴진다.

<그림에 담고 싶은 정글>
이「아마존」위의 달은 청초하기 그지없지만 그 달빛이 더욱 그윽하다. 유유히 흐르는 강물에 달빛이 번져 「실크·로드」처럼 보이는가 하면 강 양쪽의 「정글」은 암녹색에 은 빛깔의 달빛이 물들어 이루 말할 수없이 아름다운 미술적인 빛깔을 띠는 것이다. 아직까지 미술가들이 이런 밤의 「정글」을 그린 그림이 없는 것 같아 내가 화가라면 이것을 소재로 하여 훌륭한 그림을 그릴텐데 하는 아쉬운 생각이 든다.
「정글」의 그림이라야 고작 「앙리·루소」의 『뱀 놀이』란 그림 속에 나오듯이 뱀 놀이의 피리에 춤을 추는 듯 꿈틀거리는 뱀을 둘러싼 숲이 아닌가. 달빛을 머금은 기막힌 이 암록색「정글」을 그리지 못하는 것은 안타까 왔다. 구름 떼들이 흘러가며 달을 가리기도 하여 밝아졌다 어두워졌다 하는「정글」의 밤의 광경을 보며 이 밤을 새워야 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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