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의 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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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하늘은 꽤나 변덕스럽다. 음산한 겨울날처럼 잔뜩 찌푸리며 눈물을 짜내는가 하면 바로 그 다음날 활짝 웃어 보인다.
오늘부터 4월.
이제부턴 완연한 봄, 시와 사랑과, 그리고 웃음의 답이다.
『4월이란다. 아가위나무 꽃도 흰 꽃피는 계절. 태양은 밝고, 그리고 여보게 비도 포근하고….』 이렇게 「존·메이스필드」가 노래한 4월이다.
그러나 누구나 가 4월에 웃는 것은 아니다. 조물주는 마냥 너그러운 것이 아니다. 몹시도 짓궂고 인색한 것이 조물주인 것이다.
사람은 왠지 낙엽 지는 가을보다도 아지랭이를 연분홍색으로 물들여놓는 따스한 봄날에 더 죽음의 유혹을 느낀다.
음산하게 비바람 치는 날보다도 맑게 갠 날에 오히려 더 죽음에의 충동을 느낀다. 지친 평일보다도 오히려 한가한 일요일에 더 죽음의 망상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사람이 어리석은 때문일까. 아니면 조물주가 잔인한 때문일까.
4월은 마냥 환상으로 사람들의 마을을 부풀게 만든다. 이미 한해의 4분의 1은 지났다. 그 동안 아무 일도 못했다면 앞으로 남은 이 해에 무엇인가 이뤄놓을 가능도 사실은 없다. 그러면서도 마치 이제부터 무엇인가 좋은 일이 있을 것처럼 사람들은 기대하는 것이다. 역시 사람이 어리석은 때문일까.
왠지 사람은 남의 행복을 보고 자기의 불행을 느낀다. 정답게 팔짱끼고 꽃놀이가는 젊은 연인들을 보고 자기의 고독을 더욱 견딜 수 없이 고통스럽게 느낀다. 감미로운 꿈을 마냥 부풀어 놓는 따스한 봄 빛 속에서 오히려 더 절실하게 잊혀진 지난날의 상처를 되 삼키는 것이다.
아니면 하늘이 잔인한 때문일까. 『오오, 이 사랑의 봄이 얼마나 4월의 불안스러운 영광을 방불케 하는지….』
4월에 태어나서 4월에 죽은 「셰익스피어」는 이렇게 영탄 했었다. 죽음의 땅 속에서 피어 나오는 「라일락」 꽃을 보고 4월이 잔인하다고 여긴 것도 「엘리어트」만은 아닐 것이다.
4월의 하늘은 너무나도 아름다운 것이다. 마치 신기루가 아름다운 것처럼 4월의 하늘과 땅은 마냥 아름답게만 보이는 것이다.
그래도 사람들이 꿈을 갖는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는 것도 여간 좋은 일은 아니다. 아무리 4월의 하늘이 사람에게 꿈을 안겨주고 그 다음 순간에 다시 그 꿈을 앗아간다 하더라도 꿈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은 여간 다행한 일이 아니다.
어쩌면 사람들이 어리석은 탓이랄까. 꿈을 잃은 상처의 고통을 이겨낼 길이 없다는 사람들은 말한다. 그러다가도 다시 또 꿈을 갖겠다고 사람들은 발버둥친다. 그만큼 4월의 하늘은 짓궂다. 웃는 사람, 우는 사람, 그런 사람들은 아랑곳도 없이 4월의 태양은 꽃을 재촉한다. 심술쟁이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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