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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중빔 쏘고 음파 탐지 … 명량 앞바다서 보물 찾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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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문화재청 나선화 청장(사진 가운데)은 도기 전문가다. 고려청자 265점이 발굴된 전남 진도 오류리(명량대첩로) 유물에 대한 23일 브리핑을 직접 했다. 나 청장이 장구 모양의 도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 도기에 가죽을 덧대고 실을 엮어 요고(腰鼓·허리춤에 차고 연주하는 작은 장구)를 만들어 썼을 것으로 추정된다. [뉴스1]

전남 진도의 오류리 앞바다는 수중 유물의 보고(寶庫)인가. 축구장 절반만 한 크기인 4500㎡ 해역에 고고학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소장 소재구)의 발굴 결과 12~13세기 고려청자 수백 점이 쏟아져 나오면서다.

 특히 일대는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12척의 배로 133척의 왜군을 물리쳐 전세를 단숨에 역전시킨 명량대첩의 현장인 울돌목에서 불과 4㎞ 거리다. 그래서 새 주소체계에선 명량대첩로 앞바다라고 불린다. 발굴 관계자들은 일대의 해저 지형, 빠른 해류 특성 등을 고려하면 울돌목에 수장됐던 왜군의 선박들이 오류리로 밀려 왔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선박이 나온다면 조선시대 선박으로는 최초다.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는 지난해 4~11월 오류리 앞바다에서 실시한 제2차 수중발굴 조사 결과를 23일 발표했다. 고려청자 265점을 포함해 500여 점의 유물을 공개했다. 일부 파손되긴 했지만 원앙·오리 모양 청자향로, 참외 모양 병(瓜形甁), 잔 받침 등 고려시대 왕실과 귀족이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보물급 청자’도 다수 포함됐다.

 이날 유물 설명을 직접 한 나선화 문화재청장은 원앙·오리 모양 청자 향로 뚜껑에 대해 “역동적인 기운이 느껴지는 작품”이라고 평했다. “부분적으로 깨지긴 했지만 부리와 혀, 눈 등의 표현이 세밀하고 날개와 등 근육이 사실적이고 힘차게 표현돼 있어 지금까지 보고된 적이 없는 작품”이라는 얘기다.

 이밖에 삼국시대 초기의 토기, 고려시대 용 무늬 청동거울, 임진왜란 당시의 포탄 등도 함께 나왔다. 이에 대해 연구소 수중발굴과 문환석 과장은 “오류리 해안은 삼국시대부터 주민들의 집단 거주지였고 고려시대에는 삼별초가 머무는 등 해상 교류의 중심지였다”고 밝혔다. 조선시대에는 남쪽 지방의 세곡(稅穀) 등을 개경·한양으로 해상 운반하는 정박지였다. 시대를 망라해 골고루 유물이 나온 이유다.

 연구소 신종국 연구관은 “일대의 빠른 조류가 많은 배를 집어 삼켜 결과적으로 많은 유물이 나오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일대의 바다 깊이는 10~15m 정도다. 가시거리가 채 10㎝도 안 될 정도로 바닷물이 혼탁하다고 한다. 이 때문에 전문도굴꾼들이 일대의 유물에 먼저 눈독을 들였다. 2011년 해저 유물을 빼돌리던 전문도굴단이 붙잡히면서 연구소가 본격 발굴에 나서게 됐다고 한다. 더구나 오류리 현장은 해안선에 가까우면서도 오목하게 들어가 있다. 명량대첩 때 울돌목에 가라앉은 왜선들이 빠른 바닷물에 휩쓸려 얼마든지 밀려올 수 있다는 얘기다.

 문환석 과장도 “전체 조사면적(9만㎡)의 5%만 마쳤는데도 유물 500여 점이 발굴됐다”며 “5월부터 시작하는 3차 조사를 거쳐 전체 발굴을 마치면 어떤 물건들이 나올지 우리도 궁금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연구소는 이번 발굴을 위해 첨단 장비를 갖춘 발굴선 ‘누리안호’를 띄웠다. 다중빔음향측심기·측면주사음파탐지기 등으로 유물 위치를 확인한 후 해저 바닥을 흡입 펌프로 빨아들이는 방식으로 유물을 캐냈다. 문 과장은 “과학적 발굴 기법의 노하우가 쌓이면 면적당 문화재 발견량도 크게 늘어날 것”이라고 기대했다.

 오류리에서는 2012년 10~11월 1차 조사에서는 명량대첩에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개인 화기(火器) ‘소소승자총통(小小勝字銃筒)’ 석 점이 처음 발견됐고, 기린형 향로 뚜껑 등 ‘국보급’ 청자 수십 점이 발굴됐다.

신준봉·이정봉 기자

과학장비 탑재 발굴선 처음 띄워
청자향로·요고 등 유물 500점 발굴
옛 선박 등 국보급 추가 발굴 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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