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6년 국내 첫 야구 경기 … 서재필 박사 출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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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환 교수가 1928년 조선신궁경기대회 5종 경기 우승 트로피를 들어 보이고 있다. [최승식 기자]

지난달 17일 대한야구협회는 한국 야구 도입 원년을 1905년에서 1904년으로 1년 앞당긴다고 발표했다. 미국인 선교사 필립 질레트가 야구 장비를 들여와 황성기독청년회(YMCA) 회원들에게 야구를 가르치기 시작한 때가 1904년이라는 것이었다. 한국 야구 역사를 바꾼 이 발표에는 2011년 손환(50) 한국체육사학회장(중앙대 체육학과 교수)이 공동발표한 논문 ‘한국 최초 야구경기에 대한 고찰’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이 논문에 따르면 한국 야구사가 통째로 바뀐 건 실수 때문이다. ‘손기정 일장기 말소 사건’으로 유명한 체육기자 이길용이 1930년 동아일보에 연재한 ‘조선야구사’와 1932년 일본인 오시마 가쓰타로가 쓴 ‘조선야구사’에는 야구 도입 시기가 메이지(明治) 37년(1904년)이라고 되어 있다. 손 교수는 “나현성 교수가 1958년 집필한 ‘한국운동경기사’에서 서력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잘못 계산해 1905년으로 기술한 듯하다. 후학들이 고증 없이 받아들여 1905년으로 굳어졌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손 교수는 1904년을 야구 원년으로 삼는 데도 의문을 제기했다. 그보다 이른 시기에 야구를 했다는 기록이 있기 때문이다. 손 교수는 “1896년 미국인으로 구성된 서울 애슬레틱클럽과 해병대원들 사이에 야구경기가 열렸다. 서재필(미국명 필립 제이슨) 박사가 출전했다. 1902년에는 질레트가 평양 숭실학교에서 캐치볼을 한 기록이 있다”며 “야구 도입의 기준을 어떻게 정할지에 대해서는 검증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손 교수가 위원장으로 있는 야구발전위원회는 다음 달 세미나를 열어 이 내용을 다룰 예정이다.

 손 교수가 바로잡은 체육사는 야구 원년뿐만이 아니다. 그는 “1929년 건립된 군자리 골프장이 우리나라 최초의 골프장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1921년 효창공원에 9홀 골프장이 만들어졌다”고 설명했다.

 손 교수는 일본 쓰쿠바대학에 유학한 1988년부터 체육사에만 매달려 50여 건의 논문을 발표했다. 골동품상과 작은 도서관, 박물관을 뒤지는 ‘노동’을 통해 자료들을 하나하나 확보했다.

손 교수는 국내에서 찾기 어려운 겨울스포츠 사료들도 여럿 소장하고 있다. 지난 15일 서울 대치동 자택에서 만난 손 교수는 기자에게 한 권의 낡은 책을 내밀었다. ‘스키조선(スキ<30FC>朝鮮)’이라고 일본어로 쓰인, 1930년에 나온 잡지였다. 스키조선은 일본인들이 만든 최초의 스키장인 원산에서 열린 스키대회와 스키장에 대한 내용을 소개했다.

글=김효경 기자
사진=최승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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