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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가 있는 삶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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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박일호
이화여대 교수·미학

2003년, 2004년이니까 꼭 10년쯤 된 것 같다. 모 월간 경제지에 ‘박일호의 문화인물탐구’라는 코너를 통해 글을 썼던 적이 있었다. 영화, 음악, 연극, 문학, 무용, 건축 등 각 분야에서 중심축을 이루고 있는 분들을 만나 얘기를 나누고, 우리 문화의 지형도를 그려 보자는 기획이었다. 안성기, 조용필, 금난새, 박정자, 문훈숙, 승효상, 신경림, 고인이 된 최인호 등(문맥상 모든 분 존칭 생략). 2년 동안 각 분야에서 두세 분씩 24분을 만났다.

 그저 보고 듣기만 하던 이분들을 직접 만나 얘기를 나눈다는 사실만으로도 필자를 긴장시켰다. 모든 분이 필자의 알량한 미학적 지식을 들이대기엔 너무 버거운 상대라는 점 또한 큰 부담이 되었다. 많이 배웠다. 한결같이 느꼈던 건 살면서 어려운 시간도 있었지만, 자신이 가고 있는 길에 대한 신념을 갖고 있었다는 점이다. 문화적 삶이 있고, 자기가 좋아하는 일들이 있을 뿐이지, 좌냐 우냐라는 이분법적 논리는 있을 수 없다는 거였다.

 워낙 바쁜 분들이라 만나기 위해서 섭외하는 일이 가장 어려웠다. 어렵게 만나서 들었던 만큼 지금도 기억되는 얘기들이 있다. 특히 두 분의 말들을 되새기고 싶다. 박정자는 자신이 출연한 연극을 보지 않은 사람과는 인터뷰하지 않는다는 말을 듣고, 몇 달을 기다려 그가 출연한 ‘19 그리고 80’이란 연극을 본 후 만났다.

 연극 얘기부터 했다. 범상치 않은 제목의 이 연극, 자살을 생각하는 19세 청년이 장례식에서 우연히 만난 80세 할머니를 통해 삶의 지혜와 사랑을 배워간다는 줄거리이다. 이 극을 매년 자신을 제외한 다른 역할들을 바꿔가면서 그가 80이 될 때까지 보여줄 셈이라고 했다. 영화나 TV와 달리 매번 같은 연기와 대사를 반복하는 일이 지루할 법도 한데, 매년 계속한다고? 돌아온 답은 이렇다. “배우는 관객의 박수, 호흡, 눈동자 등 일거수일투족을 보면서 자기를 조절합니다. 좋은 관객이 좋은 배우를 만듭니다.” 같은 줄거리가 반복되지만, 어떤 관객이 앉아 있고 어떤 반응을 보이는가에 따라 항상 다른 연극이 될 수 있다는 거다. 같은 연극이되, 그 한 편 한 편이 결코 같을 수 없다는 뜻이다.

 개성파 연기자, 캐릭터가 강한 배우라는 평에 대해서는 부담스러운 점도 있다 했다. “연극에서 박정자가 그 배역 뒤에 있어야만 하는데, 들킬 때가 있어요. 그럴 때는 정말 민망하고 속상하기도 합니다.” 중심 코드로서 카리스마도 필요하지만, 극 안으로 자신을 녹여 넣기도 해야 한다는 말이다.

 건축가 승효상. 건축은 투기 대상이 아니라, 문화라고 했다. 낯선 곳으로의 여행에서 처음 접하는 것이 건축이고, 그 나라의 역사와 사람들의 삶의 흔적이 배어 있고 느낄 수 있는 것이기에 그렇다. 건축이 문화가 되기 위해서는 기능 위주이기보다 사람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고도 했다. 시대에 따라, 사람들의 필요에 따라 새로운 기능이 덧붙여질 수 있는 여유롭고, 공동체 정신이 담긴 곳이어야 한다는 거다. 건축물을 한 개인의 소유물이라고 생각하기보다 공유하는 공간으로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는 뜻이다. 욕심을 비울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건데, 이게 그의 ‘가난할 줄 아는 자(貧者)의 미학’이다. 연극에서처럼 함께하려 하고, 함께할 줄 아는 마음이 필요하다는 거다.

 새해가 밝았다. 작년에 이어 여기저기서 문화융성이란 말이 나온다. 작년 말 국회에선 국민의 문화적 기본권을 명시한 문화기본법을 통과시켰다. 앞으로 성, 종교, 인종, 신체조건 등에 관계없이 누구나 문화활동에 참여하고 향유할 수 있게 한단다. 인터뷰 당시인 2003~2004년에는 ‘문화입국’ ‘문화경쟁력’이란 말이 유행했었다. 지금과 별로 달라진 건 없는 것 같다. 왜? 문화는 권리나 정책이기보다 삶의 태도이며, 관객과 배우, 건축과 우리가 함께 어울리면서 만들어 내는 삶의 향기이기 때문에. 문화의 생명은 다양성인데, 획일적으로 만들어 버리지 않을까 걱정이다.

박일호 이화여대 교수·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