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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지사 '빅3' 19년간 당적 이동 19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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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신구범 전 제주지사가 17일 안철수 신당 합류를 선언하면서 지방선거 때마다 되풀이되는 제주 정가의 ‘철새 정치’ 논란이 재연되고 있다. 신 전 지사는 이날 제주도의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안철수 현상’은 기존의 정당정치를 불신하고 혐오하는 국민들의 정치적 개혁에 대한 당연한 요구이자 준엄한 명령”이라며 “이제 우리나라와 제주도의 새 정치 실현을 위해 새정치추진위원회에 참여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자신의 신당행이 안 의원 측과 사전 협의한 것은 아니라고 했다. 안 의원 측 관계자도 “우리도 신 전 지사의 합류 사실을 오늘에야 알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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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 전 지사는 우근민 현 지사, 김태환 전 지사와 함께 제주 정가를 움직여온 ‘빅3’다. 세 명 모두 72세 동갑이다. 이들의 악연은 1995년 1회 지방선거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우 지사는 91년부터 2년간 관선 지사를 역임한 상태였고, 신 전 지사는 우 지사의 후임으로 현직 지사를 맡고 있었다. 그런데 당시 집권당이었던 민자당은 제주지사 후보로 우 지사를 밀었다. 이에 신 전 지사는 무소속으로 출마해 민자당 후보인 우 지사를 누르고 초대 민선 제주지사가 됐다.

 98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두 사람은 또 맞붙였다. 신 전 지사와 우 지사는 당시 여당인 국민회의로 옮겨 와 지사 경선을 치렀다. 거기서 우 지사가 이겼지만 신 전 지사는 경선에 불복하고 또다시 탈당 후 무소속으로 출마했다. 하지만 이번엔 우 지사가 승리해 3년 전 패배를 설욕했다. 2002년 선거를 앞두고 신 전 지사는 다시 한나라당(야당)에 입당해 민주당(여당) 후보로 나온 우 지사와 세 번째 대결을 벌였다. 우 지사는 이번에도 이기면서 민선 지사 연임에 성공했다. 두 사람의 피 튀기는 대결은 양측 모두에 큰 상처를 남겼다. 우 지사와 신 전 지사는 모두 선거법 위반으로 기소돼 2004년 대법에서 벌금형 확정판결을 받고 5년간 피선거권을 박탈당했다.

 우근민·신구범의 공백을 틈타 등장한 인물이 김태환 전 지사다. 원래 국민회의(여당) 소속으로 98년 제주시장에 당선됐다가 2002년 무소속으로 제주시장 타이틀을 방어한 김 전 지사는 2004년 6월 제주지사 재선거가 실시되자 한나라당(야당) 공천을 받고 나와 당선됐다. 제주지사 선거에서 현 여권이 유일하게 승리했던 선거다.

 4회 지방선거(2006년)를 앞두고 한나라당이 새로 영입한 현명관 전 삼성물산 회장에게 공천을 줄 듯한 움직임을 보이자, 김 전 지사는 2006년 5월 전격적으로 열린우리당(여당) 입당을 선언했다. 하지만 열린우리당에서 당내 분란이 벌어지며 하루 만에 입당이 무산되는 파동이 벌어졌다. 결국 무소속으로 나온 김 전 지사는 한나라당 현 후보를 간발의 차로 눌렀다.

 2010년 선거를 앞두고 우 전 지사는 민주당 복당을 신청했으나 성희롱 논란 전력으로 당내 반발이 일자 무소속 출마로 선회했다. 한나라당 공천이 유력했던 현명관 후보도 동생이 금품살포 혐의로 구속되자 탈당 후 무소속으로 나왔다. 한나라당은 후보를 내지 않고 사실상 현 후보를 밀었지만 우 전 지사는 6년 만에 지사에 복귀했다.

 그랬던 우 지사는 지난해 11월 여당이 된 새누리당에 입당해 이번 6월 선거의 공천을 노리고 있고, 신 전 지사도 안철수 신당을 택하면서 권토중래에 나선 상황이다.

 이들 제주 ‘빅3’의 당적변경 횟수를 전부 합치면 지난 19년간 19차례에 달한다. 당명 변경이나 피선거권 박탈 등 불가피한 경우를 빼더라도 자발적 당적 변경만 14번이다. 이들의 잦은 당적 변경은 여의도에서도 화제다. 새누리당 관계자는 “제주는 여당·야당보다 ‘괸당’(가까운 친척을 의미하는 현지 사투리)이 세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연고주의와 외부배타적 정서가 강하다”며 “선거도 정당보다 개인 영향력이 중요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그럼에도 ‘철새 정치’에 대한 비판적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명지대 김형준(정치학) 교수는 “국민에게 새 비전을 제시하기보단 당선 가능성과 정치공학에만 집착해 자기들과 맞지 않는 사람들까지 끌어 모으는 게 어떻게 새 정치고 정치개혁이냐”고 비판했다. 민주당 강창일(제주갑) 의원은 “솔직히 창피하다. 제주엔 50·60대의 리더급 인사가 부족해 세대교체가 안 되고 있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김정하·이소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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