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지식] 천혜의 땅 북극, 누가 그곳을 망쳤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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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북극을 꿈꾸다
배리 로페즈 지음
신해경 옮김, 봄날의책
560쪽, 1만9800원

북극은 동쪽에서 해가 떠 서쪽으로 진다고 믿는 온대기후지역 사람들의 ‘상식’이 통하지 않는 땅이다. 해는 서쪽 지평선에 고개를 내밀었다 같은 곳에서 가라앉기도 하고, 밤낮 없이 계속 떠있기도 한다. 해가 아예 뜨지 않는 ‘극야’도 있다. 극한의 땅은 상식과 철학을 바꿔놓는다. 나무는 지표면 30cm 이내의 온기를 찾아 지표면을 껴안듯 땅으로 기어 자라나고, 손가락 굵기 만한 나무에서 200개의 나이테가 드러나기도 한다. 빛이 떠올라 동토가 녹고 물이 생겨나는 짧은 여름엔 수많은 동물이 모여들어 먹고 쉬고 새끼를 기르며 남쪽으로의 여행을 준비한다. 지은이는 이를 땅의 호흡이라 생각한다.

 “북극의 대지는 봄에 빛과 동물들을 크게 들이마신다. 여름에는 오래 숨을 참는다. 그리고 가을에 숨을 내쉬면서 그 모든 것을 남쪽으로 몰아낸다.”(234쪽)

 한계의 땅에서 사는 동물이나 인간은 억척스럽고 끈질기다. 북극곰은 물범 한 마리를 사냥하려고 온갖 전략을 써가며 한나절을 견디고, 에스키모는 그러한 북극곰의 사냥법을 배우기라도 한 듯 비슷한 방법으로 먹을 것을 얻는다. 에스키모는 한번 사냥한 것은 가죽부터 살점까지 남기지 않고 활용한다. 또 사냥한 짐승에 대한 속죄 의식도 치른다.

 에스키모의 이 같은 행위를 ‘미신’이라 치부하는 서양인들이 북극에 남긴 상처는 처참했다. 고래를 잡으면 돈이 되는 기름만 걷어내고 남은 사체는 바다에 버렸다. 고래잡이 선원 하나가 바다코끼리의 지방 덩어리로 북극곰 어미를 꾀어 새끼를 먼저 총으로 쏴 죽이고, 널브러진 새끼를 일으켜 세우고 쓰다듬으며 30분 넘게 슬퍼하는 어미마저 쏴 죽인 채 떠났다는 일화도 있다.

 서양 동물원에 납품할 사향소 새끼 1마리 당 성체 5마리가 죽어나갔다. 서로 몸을 붙여 둥근 방어대형을 만들어 무리를 끝까지 지키는 사향소의 아름다운 습성은 타지인의 경제적 이익 앞에서 무참한 살육이란 예기치 않은 재앙으로 돌아왔다. 에스키모는 그러한 서양인들을 ‘자연을 바꾸는 사람들’이라 불렀다.

 이 책의 원제는 ‘Arctic Dreams’. 지은이는 현장 생물학자로서 5년간 북극에서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북극에 관한 과학·고고학·인류학·지리학·역사 등 거의 모든 것을 다룬다. 1986년 전미 도서상 수상작. 북극에 관한 고전과 같은 책이다. 사진은 한 장도 담기지 않았다. 그럼에도 빽빽한 글 바다를 유영하다 보면 슬프고도 찬란하게 빛나는 북극의 풍경이 그려진다. 자연 앞에서의 겸손하고 따뜻한 시선, 감탄을 자아내는 묘사와 표현에 밑줄을 그어가며 읽게 된다.

이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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