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의 수신제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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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정부의 모든 부처는 예산과 자원을 절약하는데 솔선수범하고, 국영기업체의 임·직원을 포함한 지도층 인사들이 검소한 생활 태도』를 수범할 것과 특히 『고급 공무원 가족들의 생활 태도가 사치스러워 사회의 빈축을 사지 않도록 단속하라』고한 11일 박 대통령의 지시는 논어의 수신제가론을 상기케 한다. 자신의 몸가짐이나 자기 집안의 규율조차 바로 세울 수 없는 자가 남들의 위에 서서 치국과 천하 대사를 논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의 이 지시는 최근에 있었던 전직 모 고위 인사 집안의 부절제와 관련돼서 행해진 것이 아닌가 하는데서 특히 시사하는 바가 크다.
금년은 석유 에너지 파동으로 비롯된 세계 경제의 경기 후퇴가 예상되는 해이다. 이러한 상황하에서 한국 경제가 정체·위축을 면하고, 건전한 성장을 지속하기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정부와 국민이 어떤 각오와 생활 자세를 가지고 난국을 돌파해 나가느냐에 달려 있다. 일반적으로 우리 나라 고급 공무원들의 생활 수준은 그 합법적인 수입에 비해서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높다. 이래서 일부 고급 공무원과 또 특히 그 가족들의 사치스러운 생활은 국민 대중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기에 족한 것이었다.
그러나 본래 고급 공무원은 예하에 수많은 공무원들을 거느리고 있는 지도층 인사인 것이므로 관기를 바로 잡고, 일반 공무원들로 하여금 검소·내핍의 생활을 감수할 기풍을 진작, 정부에 대한 국민의 지지와 협조를 확보하기 위해서도 스스로가 청빈한 생활을 해나가는데 솔선수범 치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고래로 나라의 기강을 바로 세우는데 있어 가장 큰 역할을 하는 것은 청백리의 존재라 할 수 있다. 공적 생활에서 청렴하고 강직한 이도를 솔선수범 할뿐만 아니라, 사생활 면에서도 그가 거느리는 처자와 권속 일문이 모두 청빈한 생활의 모범을 보여주어야만 나라 전체가 이 청백리의 기풍을 자신의 것으로 알고 추종할 것이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사치는 반드시 사치의 경쟁을 불러일으키게 마련이며, 보통 사람들은 자칫 이허영에서 벗어날 수 없는 존재라 할 수 있다. 때문에 주변에 있는 누군가가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는 것을 목격하면, 무슨 수를 쓰더라도 그를 추종하려는 인간이 많이 생겨나게 마련인 것이다. 따라서 일단 이 같은 사치의 풍조가 만연하게되면, 물구나무를 선다하더라도 도저히 이 사치의 경쟁에 이길 수 없다고 체념할 수밖에 없는 대다수 국민들은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고 있는 소수 특권층 인사의 행동을 그저 시기하고 증오하게 되는 것이다.
이리하여 이 같은 사치 풍조가 자아내는 두 갈래 상반된 사회적 작용은 한쪽에서 부정·부패를 만연시키는 한편, 또 다른 한쪽에선 사치하는 자와 사치 못하는 자 사이에 메울 수 없는 사회적인 위화감을 조성하고야마는 것이다.
부정·부패의 만연이며 국가 성원간의 위화감 조성이 국가 사회의 발전을 위해 대단히 유해한 것임은 구차스러운 설명을 요치 않는다. 우리는 고급 공무원들이 솔선, 이 망국적 사치 생활을 자숙하고 일체의 부정·부패 추방에 앞장 서 줄 것을 당부하는 동시에 특히 그 거느리는 권속들을 엄히 단속함으로써 수신제가의 모범을 보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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