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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군벌」누른 당우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중공은 10개 1급 군구 및 3개 직할 군구 사령원 가운데 성도·곤명·「후호토」·「라싸」의 4개 소구를 제외한 9개 군구의 사령원을 이동시켰다.
이와 같은 대폭적인 인사조치는 문혁 초기에도 볼 수 없었던 일이다. 그러나 이번 인사의 특징들을 분석해 보면 그 의도가 제4기 전국 인민 대표자 대회와 관련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첫째, 이번 이동에서는 소위 「지방 왕국」의 주인으로 통하던 심양·남경군구의 진석련·허세우가 모두 터를 옮겼다.
진은 59년이래, 그리고 허는 57년이래 심양·남경구를 지켜온 군부최고의 실력자이다.
이들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가는 진이 상해문예파 출신의 극좌이론가들을 은근히 견제해 왔다는 「소문」이나 허의 부사령 가운데 왕필성·우태충 등 2명의 1급 군구 사령원이 배출되었다는 「사실」로써 충분히 입증된다.
이와 같은 최고 실력자를 연고지에서부터 떼어놓은 것은 확실히 다음 단계에 「무엇」이 있음을 뜻한다고 봐야할 것이다.

<한선초는 좌천당한 셈>
둘째, 허·진에 이어 군부 제3위의 강자로 통하던 복주군구 사령원 한선초(60)가 보기에 따라서는 좌천이라고 판단되는 난주군구로 밀렸다는 점이다.
난주군구는 지난 71년 한의 막하에서 부사령으로 있던 피정균(58)이 승진 발령되었던 곳이기 때문이다.

<이덕생은 심양 군구로>
따라서 이 경우에도 한의 인사 이유는 진석련(60)·허세우(66)와 마찬가지로 『지방주국을 구축할 염려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풀이할 수밖에 없다. 제남군구의 양득지 역시 마찬가지다.
세째, 소위 제4 야전군 출신의 임표계가 완전히 함몰되었다는 점이다.
신강군구의 용서금은 이미 72년12월이래 공식 활동을 중지해 왔고 북경 구군의 정유산은 71년l월 해임된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로써 임표의 사망 후 성도 군구의 양흥초, 난주군구의 장달지, 「티베트」군구의 조옹아 등 5명의 군구 사령원이 밀려난 셈이다.
넷째, 72년에야 복권한 양용(67)이 신강군구의 사령원으로 발탁되었다는 점이다. 실각 당시에 이미 북경 군구 사령원 겸 부총참모장 이었으므로 「승진」이라고 할 수 없지만 복권인사가운데 1급 군구 사령원이 된 첫 번째 「케이스」라는 점에서 주목을 끈다.
다섯째, 당 중앙 부주석 겸 군총 정치 부주임인 이덕생이 심양군구의 사령원으로 나가 앉았다는 점이다.
당내 서열이 그 정도로 높고 모의 신임이 그 정도로 두터운 인사가 군구 사령원으로 전출되었다는 사실은 언뜻 좌천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이러나 이번 인사조치가 무엇을 겨냥하고 있는가를 판단하는데는 이의 심양 군구 전출이야말로 열쇠가 될 것 같다.

<군 전체의 발언권 약화>
진석련·허세우·한선초 등 군 내부의 3대 실력자를 그들의 왕국으로부터 뽑아낸 사실과 이덕생(57)의 심양군구 확보는 분명히 「군 전체의 발언권 약화」와 통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모가 군의 실력자들을 이처럼 견제하는 이유가 무엇인가에 있다. 대부분의 관계 전문가들은 그 해답을 제4기 전국 인민 대표자 대회에서 구한다.
즉 모가 구상하고 있는 「새로운 주석단」이 군부로부터 반발을 받을 것으로 예상, 그것을 예방하기 위해 선수를 친 것이라는 풀이이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모는 제4기 전국 인민 대표 대회에서 새로운 얼굴을 주석으로 내세울 예정이며 그 「새로운 얼굴」은 군부가 반대할 가능성이 짙은 인사라는 뜻이 된다.

<국가 주석에 장춘교설>
따라서 모가 국가 주석을 물려주기로 결의한 사람이 장춘교라는 결론도 자동적으로 나온다는 것이다. 사실 장이 지난번 십전 대회에서 주석단의 비서장이라는 모호한 직책만 맡았던 것은 주로 군부 실력자들의 견제 때문이었다.
중국의 역사가 난세를 기록한 것은 3대 이래 최근세에 이르기까지 언제나 지방 군벌의 발호 때문이었으므로 모가 「젊은 세대에의 선수」에 앞서 지방군벌을 누른 것은 당연한 수순일 수도 있다.
이번 인사 조치가 이덕생을 공석중인 총 참모장 내지 국방부장으로 승진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얕게」읽지 않는 한 이와 같은 풀이가 가장 타당할 것이다. <홍사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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