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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평가된 경협『테이블』|4개월 늦어진 한·일 각료회담의 기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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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제7차 한·일 정기각료회의가 연기와 산고 끝에 오는 26일 하루 동경에서 열린다.
양국의 합의직전까지 개최여부를 점치기 어렵던 이번 회의는「정책차원」의 회의란 귀에선「슬로건」과 참석각료 및 회담날짜가 줄어든게 특징.
이런 경과와 특징은 각료회의가 거둘 성과의 한계를 이미 보여주는 듯 싶다.

<일서 먼저 개편주장>
9월초에 이틀간 열기로 했던 제7차 각료회의는 김대중씨 사건으로 인해 무기 연기됐었다.
김씨 사건을 외교적으로 마무리한 김 총리·「다나까」양 수상회담에서 각료합의의 12월 중순 개최가 합의되었다. 그후 양국의 외교경로를 통한 절충에서 12일, 14일, 18일이 논의되어 오다 20일로 대충 양해가 성립했다. 그러나 일본측은 국회사정을 들어 다시 한번 연기를 요청,26일 개최에 21일 저녁 최종합의한 것이다.
김씨 사건이 외교적으로 매듭 되기 전부터 일본에서는 한·일 각료회담의 성격·구성 및 대한경제협력의 방향이 바뀌어야 한다는 입장이 제시됐다. 경협 액수나 따지는 사무차원에서 양국간의 기본문제를 의논하는 정책차원으로 높이자는게 개편론의 방향. 자연히 착석 각료 수를 대폭 줄이자는 결론이 나온다.
또 경협은 공업위주에서 새마을 등 농업협력위주로 바꾸어야 한다는 자세를 취했다.
김·「다나까」회담에서는 경협의 방향을 제외한 각료회담의 성격 및 구성의 개편에 합의했다. 우리정부로서도 실무선에서 충분한 예비협의를 거쳐 각료회의는 정책적인 문제만을 다루자는데 이의가 있을 수 없었다.
다만 문제되는 것은 이러한 개정론을 제기한 일본의 속셈이다. 양국 수상회담이후의 협의과정을 보면 각료회담에서 경제협력이 차지하는 비중을 대폭 줄이려는게 일본의 속셈인 듯 하다.
한국으로서도 경제의 대일 편향을 줄여야 하는게 당면과제의 하나다. 그렇긴 하지만 최근 일본의 대한 경협에 대한 고자세나 각료회담 개최를 둘러싼 흥정적 태도는 우리측에 각료회의를 다시 평가하게끔 한 것 같다.
이러한 재평가론은 막상 각료회의가 무기 연기될 때 올 대내외적인 충격과 체면 때문에 가라앉긴 했으나 한·일 각료에 씁쓸한 문젯점을 남겼다고 봐야 한다.

<2억불차관 안될 듯>
한국입장에서 보면 지금까지 각료회의의 최대 효용은「달러·박스」란 점에서였다. 그 동안 이 회담에서 일본의 경협 규모가 최종 결정돼 왔다. 그러나 이번엔 경제협력에 대한 양국의 마음가짐이 이제까지와는 상당히 다르다.
재정차관을 원조로 보는 일본측은 이번 회의부터 액수를 직접 이 회의에서 흥정하지 말고 경협 자세 등 원칙적인 문제만을 논의하자는 입장이다.
우리측도 그것이 갚아야 할 차관인 만큼 구걸하는 듯한 태도는 보이지 않을 방침이다. 특히 국내의 경계론에 비추어 대일 경제의존 심화를 줄이기로 한만큼 이번 회의는 한·일 경협의 새 이정이 될지도 모른다.
「나까소네」일 통산상이 각료회의를 발표하는 날 대한경제협력을 민간 중심으로 전환하고 다국 협력이나 국제기구를 통해 하겠다는 등 5개 기본방침을 밝힌 건 일본이 소극자세를 공시화한 것으로 봐야 한다.
정부는 그간 실무교섭을 통해 종합제철확장=9천만「달러」, 새마을 사업=6천만「달러」와 북평항 개발·서울지하철추가·선박차관 등 2억「달러」이상의 재정차관을 요청했다. 일본측은 우선 북평항 개발·지하철추가·선박차관에 소극적 입장을 견지했다. 최근에는 석유파동을 이유로 건설자재공급이 어려우니 종합제철확장도 보류하자는 태도를 보였다고 우리정부는 종합제철과 새마을 차관 등 1억5천만「달러」의 재정차관을 최소 선으로 보고 있으나 전망은 밝지 않다.

<참석각료 크게 줄어>
양국에서 외상과 5, 6명의 경제각료가 참석하던 것과 달리 이번에는 외상 및 경제기구·재무·상공의 세 경제각료만이 참석한다. 각료의 수가 준 만큼 경제가 차지하는 비중도 줄어들었다.
이번 회의는 세분하던 의제를 통합해 ▲한·일 양국관계 일반 및 국제정세 ▲양국의 경제정세 ▲한·일 경제관계 ▲국제무역 결제문제를 의제로 다룬다. 경제협력이 독립의제에서 빠지고 국제무역경제 문제가 새로 추가됐다.
국제경제항목을 석유파동으로 인한 국제경제의 충격을 반영한 것이다. 양측은「에너지」파동으로 인한 고민을 완화하는데 협조할 수 있는 방안을 협의할 예정이다.
각료회의는 이 지역의 국제정세변화를 전반적으로 평가하고 현안에 관해 광범히 협의, 의견이 다른 점을 조정하고 같은 점을 확인하는 기회로서 의미를 갖는다. 정책차원회의란「슬로건」을 내건 7차 회의에선 정치문제협의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아졌다. 한반도의 긴장완화와 한·일 안보의 동결, 일본의 북한과의 접촉확대억제, 국제기구에서의 협조, 한국의 대 공산권 외교에 대한 지원, 「사할린」교포송환을 위한 일목의 역할, 재일 교포의 지위개선등이 다루어질 주요「토픽」이다. 작년 회의에서 원칙을 정한 대륙붕공동개발 협정은 내년 초에 체결키로 합의할 것이 확실하다.
김대중씨 사건이 외교적으로는 일단 매듭지어졌지만 일본 안의 여론에 비추어 이 기회에 수사진전과 김씨의 해외여행에 대한 일본정부의 관심이 표명될 것으로 보인다. <성병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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