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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뚝에「비닐」마개 씌워 의사 일가 의혹의 연탄 개스 중독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연탄 아궁이의 굴뚝에 난데없는「비닐」마개가 씌워졌다. 연탄「개스」가 빠져나가는 굴뚝을 그렇게 틀어막았을 때 일산화탄소가 잔뜩 포함된 연탄「개스」는 아궁이로 되돌아가면서 방안에서 잠든 가족의 생명을 위협할건 뻔한 일. 서울 도봉구 미아6동 688의5 산부인과 의사 김양선씨(51)집 굴뚝 끝에 바로 이 같은「비닐」마개가 10일 동안이나 씌워져 이 때문에 지난 11일 새벽 김씨네 한가족 10명이 연탄「개스」에 중독된 끔찍한 사고가 일어났다. 신고를 받은 서울 북부경찰서는 누군가 김씨 일가족을 해치려고 일부러 굴뚝 끝을 틀어막아「개스」중독 소동이 벌어진 것으로 보고 사건의 수사에 나섰다.
문제의「시멘트」굴뚝은 5층 건물(건평 1천9백87평)의 1층 남쪽구석 김씨의 넷째딸 숙민양(14·수유여중 2년)이 쓰는 방 밖에 세워져 있다. 높이는 5m로 2층 중간쯤 솟아 있으며 이웃집 추녀사이로 바짝 붙여 세워져 지붕으로 올라가지 않으면 사람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있다.
지난 11일 새벽4시쯤 김씨 부부는 잠결에 심한 두통을 느꼈다고 했다.
부인 한금난씨(49)가 엉금엉금 기어 방문을 열었다. 이 때 가정부와 일가족이 잠자던 맞은편 방에서도 신음이 들렸다. 한씨가 방문을 열어보니 가정부 주순호씨(41), 딸 김경숙양(19), 아들 김의진군(4)등 3명이「개스」에 취해 꿈틀거리고 있었다.
깜짝 놀란 한씨는 자기의 딸 5명이 자던 옆방 3개도 두드렸다. 맏딸 김숙현양(22·경희대의대 3년)등 5자매는 거의 의식을 잃고 있었다. 일가족 10명이 나누어 자던 방 5개에 한결같이 연탄「개스」가 스며든 것. 집안복도와 진찰실에까지「개스」가 차 있었다. 김씨가 의사였기 때문에 응급조치로 가족들의 위험을 구할 수 있었으나「개스」중독 공포는 사라지지 않았다.
굴뚝에「비닐」뭉치가 덮여 씌워져 있었다는 사실은 지난 20일 상오 이웃 이모씨(40·여)가 찾아와『당신 집 굴뚝이 막힌 것 같다』고 김씨 집에 알려준 데서 비로소 발견됐다.
김씨는 이웃집 지붕 위로「올라가 굴뚝 끝에「비닐」뭉치가 틀어 막힌 것을 확인했다.
김씨는 지난해 8월 삼양「빌딩」5층 철근「콘크리트」건물의 1백70평을 세내어 개업했다. 가족이 잠자던 방은 원래 입원실로 꾸민 것.
「플래쉬·도어」안쪽에 연탄 아궁이를 만들어 방마다 고래를 틔워 넷째 딸이 자던 방 남쪽에 1개의 굴뚝을 세웠다.
김씨는 당초 보증금 2백만원, 월세 6만원의 조건으로 임대했다.
지난 1월9일 건물주가 바뀌고 9월말로 계약기간이 만료되자 새 건물주 김영주씨(토금산업 대표이사)는 보증금을 1백만원 인상, 계약경신을 요구했다. 의사 김씨가 이에 응하지 않고 4회나 써준 지불각서를 무시, 월세·전기·수도세 등 90여만원이 밀리자 건물주는 지난 8월15일부터 단전·단수했다. 또 10월25일 서울 민사지법에 가옥명도소송을 제기, 법정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이에 대해 건물주 김씨 측은 굴뚝에「비닐」뭉치가 씌워져 있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고 말하고 김씨 가족들이 도대체 연탄「개스」에 중독됐다는 사실 자체도 믿을 수 없는 일이라고 반박, 진상이 밝혀지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한편 경찰은 건물주와 입주자간의 불화로 빚어진「미스터리」로 보고 김씨 가족의 집단「개스」중독 경위와 굴뚝이 막힌 경위 등을 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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