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루엔저」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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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H·G·웰즈」가 19세기말에 쓴 공상과학소설에 『세계전쟁』이라는 게 있다. 우주인과 지구와의 싸움을 상상해서 그린 작품이다.
화성인들이 지구를 공격해 왔다. 그들의 신천지를 찾기 위해서였다. 그들은 독「개스」·살인광선·핵무기들을 사용해가며 지구인을 대량 살해해 나간다.
지상은 단숨에 폐허가 되어버리고, 지구인들은 두더지처럼 굴을 파고 지하생활을 해가며 간신히 목숨을 이어나간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아무 일도 없는데 우주선이 차례로 떨어져 파괴되고, 화성인은 한사람도 남김없이 죽어간다.
지구인은 이리하여 기적적으로 살아난다. 까닭인즉 당시 지구인들이 가장 무서워했던 전염병의 병원체인 「박테리아」들이 화성인들을 쓰러뜨린 것이었다. 「박테리아」는 화성에는 전혀 없던 것이다. 따라서 전혀 저항력을 가지고 있지 못했던 화성인들은 감염되기가 무섭게 쓰러져 나간 것이다.
「웰즈」의 「아이러니」는 인류구세주를 사람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박테리아」로 만들었다는데 있다.
「웰즈」가 이 작품을 쓰고 있을 무렵에는 「파스퇴르」 「코흐」 등이 세균학의 틀을 겨우 잡아놓기 시작했을 때였다. 새삼 「웰즈」의 예언에 놀라게된다.
오늘날 세계를 위협하고 있는 문제들에는 「에너지」부족이외에도 식량부족이 있다.
이를 해결하는데 「박테리아」의 힘이 필요하다고 보는 미생물학자들이 있다. 오늘날 밝혀진 세균 중에서 우유를 먹고사는 미생물이 1만종이나 된다.
이들의 번식력은 엄청나며 영양가도 높다. 따라서 세계의 석유생산의 1%만을 이들의 배양에 돌려도 30억명분의 단백질이 보족된다.
이미 이런 석유 단백 세균들은 1960년대 초부터 각국의 석유회사들이 공업화에 나서고 있다. 그러니까 언제라도 인간용식품으로 전환될 수 있다는 얘기다.
언젠가는 이처럼 세균들이 인류의 구세주가 될지도 모른다. 「웰즈」가 예언한 것처럼 우주전쟁에서 지구를 살아남게 만드는 것도 「박테리아」들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직은 인류에게 있어 가장 무서운 것이 「박테리아」다. 지난주만 해도 일본에서 17만명의 독감환자가 발생했다고 한다. 언제 또 우리 나라에 상륙할지 모른다.
정확하게는 B73형「인플루엔저」가 유행중이라는 것인데 잘못하면 이보다 더 사망률이 높은 A형이 유행될 것도 같다는 얘기도 있다. 그 어느 형이든 모두가 「박테리아」균의 장난이다. 「홍콩」감기니, 아세아감기니 하는 것들도 마찬가지다.
지난 1918년에 온 세계를 휩쓸던 「스페인」감기라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때는 불과 8개월 사이에 2천만명 이상의 환자가 죽었다. 아직은 아무도 「인플루엔저」균을 막아내지 못하고있다. 「웰즈」의 예언을 따르자면 그게 오히려 다행한 일이라고 여겨야 할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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