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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루마니아」자동차 기행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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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보잘 것 없는 가구에 침대는 「소파」다. 거미줄이 쳐진 변소를 가리켜 주고 영감은 본 기자 여권을 달래서 갖고 사라져 버린다.
소위 「민박」집인가 보다.
으슬으슬 추워 옷을 입은 채로 자는 둥 마는 둥 뒤척이다가 해뜰 무렵 방 값 50「레이」(약1천2백원)를 치르고 여권을 되돌려 받는다.
아침이 너무 일러선지 아침밥 먹으라는 말도 없다. 그대신 영감은 담을 기어오른 포도덩굴에서 익지 않은 포도 한 송이를 따다 아무 말이나 표정 없이 덥석 기자 손에 쥐어 준다.
모든 게 무슨 무성영화 속의 환상 같아 현실 같지가 않다. 한참만에 겨우 찾은 「트랙터」차고 같은데서 휘발유를 사 넣고 왠지, 무슨 꿈에서 깨어난 듯한 기분으로 「폭사니」를 빠져 나온다. 마을 어귀, 흙탕물 길가에서 송아지 만한 돼지놈이 인민위원회에서 세워 놓은 수판에다 등을 비비고 있다가 차가 오니까 디룩거리며 달아난다.

<발칸의 파리 아닌 현대식>
수도인 「부카레스트」에 가까워 오면서 그 동안 어디서나 우글거리던 돼지 떼와 거위 떼는 적어지고 다시 자동차들이 많아진다. 거의가 3, 4년전부터 「다치아」라는 「마크」가 붙어 「루마니아」에서 조립돼 나온다는 「프랑스」제 「르노」차들이다.
「프랑스」에는 어딘지 친근감을 느껴선지 이 곳 국영여행사「ONT」가 찍어낸 안내책자에 까지도 「부카레스트」를 『「발칸」의 「파리」』라고 한다고 거리낌없이 적혀 있다.
그러나 원경으로 비치는 「부카레스트」는 『「발칸」의 「파리」』라고 하기에는 외관이 고도로서의 어이없이 너무나 현대적이다.
1847년 전시를 휩쓴 대화로 도시 전체가 새로 만들어진 때문일테지.

<영·독·불어로 안내해 줘>
그러나 차가 시내 한복판 웅장한 내각사무처가 도사린 승리의 광장을 지나 중심가로 들면서 대화에 살아 남았거나 그 후 복원된 고풍 어린 아름다운 건축물들이 모습을 드러내 보인다.
18세기 「루마니아」독특한 「브장코비안」풍의 「스타보폴레오스」성당, 「프랑스」의 「네오·클라식」형의 민속박물관, 이밖에도 국민은행·의사당·중앙우정국·「부페툴」대연회장 등 「부카레스트」가 자랑스럽게 손꼽는 대표적인 건축물들이 우거진 가로수, 잘 가꿔진 녹지대들과 어울려 그대로 아름다운 정경을 이룬다.
서구에 갖다 놔도 특급 다음은 갈 만한 「아테네·팔레스·호텔」에 짐을 들고 가 국영여행사의 관광 「버스」로 시내 구경에 나선다.
『우리의 영웅적인 공화국 수도를 찾아 준 여러분을 환영한다』를 서두로 공산국의 어디서나 그렇듯이 중년 부인의 안내원이 영·독·불어로 설명해 나간다. 설명이라기보다 노골적인 자랑조다.
「부카레스트」에는 20개의 공원, 7백6개의 도서관, 99개의 영화관, 지난 삼년 동안 매년14%씩 성장해 온 전국 산업 시설의 5분의1… 등이 있다고 한다.

<신화를 쌓아올린 건물들>
이에 곁들여 항쟁·자유·인민주권·영웅·승리 등등의 거창한 단어가 뻔질나게 튀어나온다.
사람들은 그저 건물들을 지어서 도시를 만드는 게 아니라 신화들을 쌓아 올려 도시를 세우는 젓인가 보다. 「부카레스트」의 경우 그런 느낌은 더욱 짙다.
우선 지명부터가 그렇다.
8월 23일 공원, 1848연가, 승리의 광장, 「마게루」장군로 등등‥. 공원이나 거리뿐만이 아니다.
8월 23일 운동장, 8월 23일 자동차공장, 8월 23일 구하는 식으로 약방의 감초처럼 아무데나 붙는 것이다.
여기서 8월 23이란 1944년 8월 23일로 「나치」가 망해 갈 무렵, 「부카레스트」시민들이 인민 반란을 일으킨 날이다.
또 1848년은 이 나라의 국부의 하나로 꼽히는 「니큘라이·발체스큐」가 혁명 헌법을 선포했던 해, 「승리의 광장」은 1877년 독립전쟁의 승리를 기념한 것이다.

<무화과 가로수 우거지고>
그리고 「마게루」장군로를 비롯, 「안나·이파체스큐」가, 「발체스큐」가 등은 1878년 이 나라가 독립되기 전「터키」에 저항한 애국지사들의 이름을 붙인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런 민족적인 신화들은 그저 지명이라는 추상으로서만 끝나지는 물론 않는다.
웬만한 거리 치곤 누군가의 동상이 안 서 있는 곳이란 드물다. 그리고 공산국답게 공식 명칭이 장황한 「사회주의 및 조국과 인민의 자유를 위한 투쟁에서 쓰러진 영웅들의 기념탑」, 「루마니아 민주혁명 운동 및 공산당 당사 박물관」, 「루마니아직업동맹 전국총련맹무용가극 앙상블」 연주회관 등 따위의 수많은 기념탑, 박물관, 각종 건물과 기관들 역시 갖가지 신화들을 연상하는 것이자 그것을 영존 시키려는 물질적 수단, 또는 적어도 영존 시키고자 하는 의욕을 상징하는 것들이다.
하긴 어디서나 사람들은 신화를 씹어 먹고 사는 이니 여기라고 해서 다르다 할 것까진 없다.
「버스」가 무화과 가로수 우거진 「차우제」가의 개선문 앞을 지나 「헤라스트라은」공원 속에 들어가자 이내 눈앞에 탁 트이는 큼직한 호수를 배경으로 「부카레스트」명물의 하나로 손꼽히는 「민속촌」앞에 다다른다.
「무제움·사툴루이」즉 민속박물관이라는 공식 명칭이 붙은 이 민속촌은 그 규모·구조·분위기 등이 그저 노천박물관이라고 하기보다는 하나의 살아 있는 거대한 마을이라고 하는 게 실감에 가깝다.
동북 「무코비나」지방의 초가집들, 문지방부터 첨탑 끝까지가 완전히 나무로만 지어진 「마라뮤레」지방의 유명한 목조 성당들, 남국적인 주랑을 덮은 덩굴에 포도송이들이 영그는 중남부지방의 아담스런 농가들, 전국 각지방의 황토색 짙은 형형색색의 전통적인 건물들이 천연스러운 민속촌을 이루고 있다. 모두 2백91개에 달하는 이런 건축물들은 실제 각지방에 있는 그대로라는 것이다.

<관광객 몰리는 민속촌>
집들뿐만 아니라 집 속의 갖가지 가구들, 울타리, 대문, 하다못해 석고를 한 끝에 단 길다란 수평 장대 끝에 매단 우물바가지까지 모두가 몇 십년 몇 백년 전에 지방민들이 쓰던 것들을 그대로 옮겨다 논 것이란다.
벌써 1925년부터 민속학자들에 의해 계획되기 시작한 이 민속촌은 전통적인 민속 문화의 보존을 위한 박물관적인 가치뿐만 아니라 매년 수많은 관광객을 끌어 모으는 관광자원으로의 구실을 톡톡히 한다는 얘기다. 충분히 곧이 들리고 남는다.
이렇게 시간이 멈춰 버린 듯한 이 민속촌 바로 너머 「치엔테아」광장 끝엔 당기관지 「치엔테아」본부와 「프로레아스카」주택가의 고층 「아파트」군이 병립하고 있어 격세의 대조를 이룬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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