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대회 소와의 배구대결 관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우리선수의 멋진「스매싱」에 박수 북한기자 감추고 태극기만 펄럭 아름다움보다
관광객들 기념사진에 빼 놓을 수 없는 배경을 이루는 성「바실리」사원이 주는 첫 인상은 아름다움이라는 것보다는 강렬한 곤비감이다.
양파·솔방울· 파이애플·예초뿌리같은 갖가지 모양의 지붕을 쓰고 서있는 탑들.모양도,양식도,색깔도 하나하나가 다 달라 언뜻 아무런 균형도,조화도,질서도 없다.
희랍· 「로마」· 「비잔틴」·「아랍」·「타마르」· 「곤덕」등 별별 양식들이 그대로 겹치고 덮쳐 그저 되는대로 뭉개 놓은듯한 벽돌의 덩어리엔 무슨 일관된 흐름 같은 것도 눈에 띄질 않는다. 창문 하나하나도, 색깔 하나하나 모두가 뿔뿔이 다르다.
어째서 사람들은 이 사원을 그렇게도 아름답다고,그렇게도 「러시아」를 대표한다고 하는 것 될까?
이튿날에도 가보고,사흘째도 가보고 결국 1주일 내내 매일 가보게 됐다. 바로 강 건너 「호텔· 러시아」5층 방에서도 아침·저녁으로 쳐다보고 지냈다. 그런데 이상하다. 볼 때마다 조금씩 달라진다.흩어진 쇳가루가 자력을 따라 서서히 제자리를 찾아 어떤 필서를 이루며 변해가는 것처럼 변한다.
6일째 가보고 조화 발견 엿새째 새벽, 널 다란「모스크바」하늘이 동틀 무렵「호텔」창 밖 텅빈 광장엔 성「바실리」사원이 거의 기적적으로 변화된 모습으로 우뚝 서 있다.「난잡」이 있던 자리에 균형과 조화와, 그리고 지금까지 찾지 못했던 질서가 있다.이것은 기적의 변화라고 해도 괜찮다. 어떻게 해서 이렇게 되는 건지 기자는 지금도 모른다.
그러나 이렇게는 얘기해도 좋으리라고 여겨진다. 『그러한 조화,그것은 오랜 세월「러시아」사람들이 학구해 온 이상이었을 것』 이라고 이 사원을 새운 「이반」번제(1554∼1560)를 거의 광란토록 황홀케 한 것도 이런 신비의 마력이었는지도 모른다.
예나 지금이나 러시아란 큰 나라다.잡다한 인종들이 모여서 산다.
「러시아」인·「우크라이나」인· 「리투아니아」인· 「몰다비아」인, 동쪽으로 가선「그루지야」·「아르미니아」·「우스베크」· 「타타르· 수고족」등 인종· 배경더러는 지향까지 모 각색인 「부분」들이 모여 하나의 덩어리 큰 나라를 이룬다. 한국인 후예도 공식 통켸로는 30만명을 헤아린다.
오랫동안 흩어져 살아온 이들 전부를 하나의 운명에, 공동의 목적에,그리고 통일된 중앙에 묶는다는 것은 꽤 벅찬 일이었을 것이고 지금도 그럴게 분명하다.그래서 라도 성「바실리」사원 꼭대기의 십자가나, 광장 건너「무렘린」담「스마스키에」시계탑 위의 붉은 별이 엄청난 통일의 일화들을 엮어 내오기도 했고 가다가는 「이반」제의 공포가 「러시아」벌판을 휘몰아치기도 했나 보다.
성「바실리」사원은 지금도 역시 이 넓은땅에 사는 사람들의 희구를 상징한대도 괜찮다.

<핏줄은 어쩔 수 없는지>
기명가 어쩌다 기분 상실증에 걸려 딸을 잊기 시작했다고 친다. 제일 마지막까지 기억에 남아 있을 말들이 몇 개 있다.이런거다.『또 한번 더 울리구!』『갈겨」!】『주와, 주와」. 서울 사투리 섞인 우리 배구 선수들의 고함소리가「모스크바」 「소코르니기」배구장담벽을 쨍쨍히 때리고 인두로 지져대는 듯 뇌리에 붙어버렸다.「네트」반대편은 소련「팀」인 . 펑펑 갈켜대는 배구「볼」사이로 자꾸 서울말 고함이 터져 나온다.『괜찮다구!』「홈· 그라운드」인데다가 워낙 체격도 크고 솜씨 또한 금「메달」감인 소련「팀」「모워드」의 벼락같은 「스매싱」으로 우리「팀」「코트」에 구멍이 뻥뻥 뚫린다.
5:3·9:5· 「스코어」가 자꾸 벌어져 가자 그 사이로 이번엔 노래가 흘러 나온다.『송아지 송아지 얼룩송아지,엄마소도 얼룩소….』
응원 온 우리 여자 배구 선수들이 이런 노래를 응원삼아 부르기 시작하자 장내를 메운 관중들이 손뼉에 박자를 넣어 맞장구를 친다.
「멍」뚫린『또 한번 때리구!』『엄마 닮았네….』잡다한 음향들이 엇갈리며 기묘한 교향악을 이룬다.
치긴해도 양력은 대단·더 댓줄 아랫 좌석에 앉아 있는,평양에서 왔는지 교포인지 우리 같이 생긴 젊은 부부가 우리 선수의 멋진「스매싱」이 성공하자 박수를 치며 좋아한다.아하,피는 역시 어쩔 수 없는 것인가 보다.「전세계」청년 학생들의 친선과 단결을 위하여!」이런 현수막이 양쪽에 한 폭씩, 그리고 북쪽벽엔「유니버시아드」참가국의 국기들. 태극기가 한가운데쯤 걸려 장내를 굽어본다.
어제까지 태극기 바로 옆에 걸려있던 북한기는 어찌된 셈인지 오늘부턴 자취를 감춰 안 보인다.참가를 하지 않기로 해서 떼어냈는지 모른다.
첫째든,둘째「세트」, 그리고 마지막 「세트」도 결국 소련이 이겨「게임」이 끝난다.
경기장 모인 응원 못 잊어 우뢰와 같은 박수와 갈채, 교포부부도 일어서서 박수를 친다. 소련에 졌지만 은「메달」하나 동「메달」은 타게 됐다.기자도 일어나 박수를 친다.
장외. 엄청나게 큰 「모스크바」석양이 뉘엿뉘엿 가라앉으면서 경기장 둘레 공원 숲에 땅거미가 번진다.『오늘 졌습니다.그러나 우리도 하면 되고, 더하면 이길 수 있다는 자신을 갖게 됐습니다. 』 감독이 이런 말을 남기고「버스」에 오른다.
한바탕 소나기가 쫙 내린다.「메트로」지하철을 타고「호텔」근처 붉은 광장으로 향한다. 바퀴가「레일」침하를 뚝딱거리는 사이로 이런 말들이 자꾸 귓전을 때린다.『한번 더 올리구!』『괜찮아!】 『주와,추와!』 <계속>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