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대회 먼저 개최 … ‘레이디 퍼스트’ 에티켓은 어디로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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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7호 19면

올해 US오픈 골프대회는 ‘더블헤더’ 방식으로 열린다. 노스캐롤라이나주 파인허스트 골프장의 2번 코스에서 6월 12일부터 남자 US오픈이, 그 다음 주에는 여자 대회가 개최되는 것이다. 야구의 더블헤더 경기방식과 같다.

성호준의 세컨드샷 <5> 더블헤더로 열리는 올해 US오픈

 장점이 있다. 골프 대회를 하려면 곳곳에 방송중계 카메라가 올라갈 탑을 쌓아야 하고 이런저런 대형 텐트를 쳐야 하는데, 더블헤더는 이 비용을 확 줄일 수 있다. 아무래도 여자 대회는 카메라 수 등 방송 장비가 열악한데, 남자 메이저 대회의 장비를 그대로 쓰면 중계의 질이 나아질 듯하다. 두 대회를 연이어 열면 자원봉사자를 모으기도 쉽고, 패키지로 판매해 입장권 수익도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한 골프장에서 남자 선수와 여자 선수의 거리 차가 얼마나 나고, 공략 방식은 어떻게 다른지 비교해 보는 재미도 쏠쏠할 듯하다.

 그러나 순서가 문제다. 여자 대회 후 남자 대회를 하는 건 괜찮은 방법이지만, 코스를 쑥대밭으로 만드는 남자 대회 후 여자 대회를 여는 건 적절하지 않다. 대회를 주최하는 미국골프협회(USGA)가 ‘레이디 퍼스트’라는 신사의 에티켓을 지키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USGA가 남자 대회를 먼저 여는 이유는 남자 대회에 완벽한 페어웨이, 그린을 주기 위해서다. 특히 그린에서 핀 포지션은 매우 중요한데 가장 좋은 자리를 남자들에게 선택할 수 있게 한 것이다. US오픈의 특징은 언더파 우승이 나오지 않도록 코스를 지독하게 어렵게 한다는 점이다. 특히 그린을 빠르면서도 시멘트처럼 딱딱하게 하기 위해 잔디가 말라 죽을 정도로 물을 주지 않고 롤러로 짓누른다. 남자 US오픈을 치르고 나면 그린을 살리는 데 최소 몇 개월이 걸린다.

 이 황폐화된 그린을 곧바로 여자 대회에서 써야 한다. 그렇다고 USGA가 여자 대회를 배려하기 위해 남자 대회 때 그린을 보호하지는 않을 것이다. 부드러운 그린은 US오픈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린뿐 아니라 골프장의 다른 곳도 ‘정상에서의 공포’라고 불리는 남자 US오픈을 치르면서 상태가 나빠질 것이다.

 USGA는 “한 곳에서 남녀 대회를 함께 여는 테니스 메이저 대회처럼 하려 했다”고 했다. 그랬다면 여자 결승을 남자 결승보다 먼저 치르는 테니스 메이저 대회의 순서도 참고했어야 했다. 특히 윔블던은 잔디 코트에서 치러져 골프와 비슷한 면이 있는데 역시 여자 결승을 먼저 치른다. 여자 결승 등을 치르면서 짓밟혀 색깔이 변한 센터 코트에서 경기를 한다고 해서 남자 결승의 권위까지 짓밟히지는 않는다. 오히려 누렇게 바랜 잔디 위에 있는 선수들은 더 멋져 보인다.

 테니스와의 비교가 나와 돈 얘기도 해야겠다. 테니스 메이저 대회는 남녀 상금이 같다. 반면 US오픈 골프 상금은 남자 800만 달러, 여자 대회는 325만 달러다. 인기와 관중 수입 등이 다른 남녀 선수들이 똑같은 돈을 받아야 하느냐에 대한 논란은 있다. 남녀 US오픈이 다른 경기장에서 열릴 때는 그러려니 했는데, 같은 경기장에서 대회가 열리니 돈 차이가 더 커 보인다. USGA가 돈이 없는 것도 아니다. 중계권료로 내년부터 매년 9000만 달러를 받는다.

 US오픈은 온전한 한 라운드가 되어야 뛰어난 실력을 가진 선수를 가릴 수 있다면서 남자 연장전을 18홀로 한다. 그런데 여자 연장전은 3홀로 끝낸다. 궁색한 변명도 내지 못한다. 이것까지 시비를 걸지 않더라도 더블헤더로 남자 대회를 먼저 하면 긴 연장전 때문에 여자 대회 일정에 문제가 생길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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