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Sunday] 마성의 외교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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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7호 31면

외교는 연애와 닮았다. 연애로 맺는 관계는 relationship, 외교관계는 relation이다. 관계를 맺는 목적은 하나, 잘해보자는 것이다. 하지만 수많은 연애가 눈물 젖은 소주잔으로 끝나듯 외교 역시 많은 경우 험로를 걷는다.

외교는 연애와 다르다. 연애는 끝나면 안 보면 (혹은 못 보면) 된다. 외교는 나라를 옮기지 않는 이상 끝을 못 낸다. 사랑과 미움은 한 끗 차이인지라 수많은 연애가 막말로 쇠락하지만 외교는 표정·말만큼은 점잖아야 한다.

한·중·일 3국은 어떤가. 중국의 ‘입’ 화춘잉(華春瑩) 외교부 대변인은 9일 공식 브리핑에서 일본의 군국주의를 두고 “역사상 가장 어두운 악마”라는 단어를 썼다. 영국 주재 중·일 대사는 서로를 ‘볼더모트(‘해리 포터’에 등장하는 마왕)’라고 부르는 신문 기고를 주고받았다. 정통 외교관으로선 막말의 막장을 보인 셈이다.

한국 역시 연타를 맞았다. 지난달 26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야스쿠니를 참배한 데 이어 10일엔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전 총리가 박근혜 대통령을 두고 “고자질하는 여학생처럼 외교를 한다”고 했다. 정치인으로서 수명 연장을 원하는 노다 전 총리의 뜻은 알겠지만, 그의 말엔 리더의 품격이 없다. 그는 아베 총리를 비판하면서 이 발언을 했지만 결국 한국에 대한 얕은 생각을 노출하고 말았다.

여기에 발끈하면 하수(下手)다. 독도 도발에 대해 새끼손가락을 자르는 시위를 한다고 해도, 아픈 건 그 손가락뿐.

임경선 작가의 ‘마성의 여자 vs 타성의 여자’가 떠오른다. 임 작가는 “타성녀는 ‘춥네’라면서 애인 눈치를 보고, 마성녀는 그의 호주머니에 손을 스윽 넣는다. 타성녀는 남자친구를 못 만나는 날 다른 남자를 만나고, 마성녀는 혼자서 자기 매력을 갈고닦는다”고 했다. 타성에 젖은 여성(안타깝게도 대부분의 여성)은 속셈을 갖고 남의 눈치를 보는 반면, 마성으로 불타는 여자는 자기만의 콘텐트를 갖고 질주할 줄도 안다는 뜻이다. 외교도 이렇게 해야 하지 않을까.

한·일은 태평양 건너 미국이라는 ‘남자’를 사이에 둔 삼각관계의 여자 같다. 미국은 어차피 둘 다에게 마음을 다 줄 생각은 없지만 강력하게 등장한 중국이라는 ‘이웃 남자’가 신경 쓰인다. 여기에 한국이라는 여자의 동생 격인 북한은 위험한 골칫덩이로 관리 대상이다. 얽히고설킨 이 사각관계는 알렉산더왕이 고르디아스의 매듭을 칼로 싹둑 잘라버렸듯 단칼에 해결할 수도 없다. 이 지역에 태어난 이상 평생 안고 가야 한다.

이왕이면 마성녀처럼 외교를 하면 어떨까. 눈치만 보지 말고 주머니에 손을 스윽 넣기도 하고 혼자만의 매력을 닦아 남들이 제 발로 걸어와 구애하도록. 외교에도 ‘그린라이트(JTBC ‘마녀사냥’에서 ‘호감’을 뜻하는 은어)’가 켜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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