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2322대 0은 비정상이자 광기일 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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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전주 상산고가 어제 고교 한국사 교과서 8종 가운데 교학사 발행 교과서를 선택하기로 한 결정을 철회한다고 발표했다. 올 3월 개교 예정인 경기도 파주 한민고도 이 교과서 채택을 유보하기로 했다. 이로써 전국 고교 2322개 가운데 교학사 교과서를 선택한 곳은 단 한 군데도 찾아볼 수 없게 됐다. 전교조는 이를 두고 성명서에서 “몰상식에 대한 상식의 승리”라고 표현했다.

 시장에서 선택받지 못한 존재라면 사라지는 게 마땅하다. 다만 여기에도 전제가 있다. 소비자가 어떤 선택을 하도록 강요받지 않는 환경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시장에 나온 교학사를 포함한 7개 교과서는 정부의 검정을 통과했으며, 이 가운데 교학사는 이인호 서울대 명예교수 등 역사학계 원로 학자 23명에게서 “교육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판정을 받은 바 있다.

 그런데도 이 교과서를 선택하려던 상산고 등의 홈페이지 게시판은 욕설과 항의로 도배됐다. “김구는 테러리스트”, “위안부가 일본군을 자발적으로 따라다녔다”는 서술은 이 교과서 어딜 찾아봐도 없는데도 버젓이 있는 문구로 둔갑했다. 심지어 상산고가 교학사·지학사 두 종을 선택해 학생들에게 균형 잡힌 역사 인식을 갖도록 가르치겠다고 하자 전교조 전북지부는 “쓰레기와 오물은 굳이 체험해야만 아는 게 아니다”는 성명을 냈다.

 2322대 0은 전교조의 주장대로 상식도, 정상도 아니다. 남의 생각은 한 치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집단 광기의 결과일 뿐이다. 정부는 이번 일을 계기 삼아 우리 교과서 검정체제의 취약성을 보완해야 한다. 악선전과 여론몰이가 판치는 상황에서 검정체제가 보장하려는 다양한 시각, 자유로운 사고는 존립할 수 없다. 오죽했으면 서울지역 318개 고교 중 90여 곳이 아예 한국사 수업을 1학년이 아닌 2·3학년으로 유예해 교과서 선정을 미루겠는가. 선택을 방해하고 강요하는 일체의 행위는 민주사회의 적이다. 특단의 조치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