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구갑을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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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중국에서 가장 오래 된 의학서로는 <황제내경>이라는 게 있다. 황제가 기백 등 6명의 명의들과 궁전에서 의학토의를 벌인 결과로 맺어졌다는 책이다.
물론 어디까지나 전설에 속하는 얘기라 믿을 수는 없다. 다만 그렇게 오랜 역사를 한의학이 갖고 있다는 것만은 틀림없다. <황제내경>의 원리는 이렇다. 천지와 인체 안에도「기」라는 게 있다. 이게 바로「에너지」이다 혈은 이 기가 구현된 혈액이다.
그리고 이 기의 경로에는 내장 감각기관, 손·발들을 연결하는 12의「루트」가 있다.
이것은 서양의학에서 말하는 신경계통이나 혈액순환계통과는 다른 순환「루트」이며 이를「경락」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루트」의 정거장에 해당하는 곳이 경혈이다. 한편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침구 전문서로는 <침구갑을경>이라는 게 있다. 위·진 시대의 성보밀이 지은 책이다.
이 책은 그 이전의 침구술의 이론과 실제를 총 망라한 것으로 오늘날의 침구술의 기초를 이루고 있다. 한의학의 이러한 순환「루트」설에는 지금까지 서양의학에서 사뭇 회의적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민감한 전기측정장치를 이용한 실험으로 확인되어 있다.
어디까지 확실한지는 몰라도 서기 3세기 때의 명의 화타는 개복. 안구수술들을 했다는 기록이 있다.
서기 3세기라면 서양에서는 나마 말기로 거의 의학이 미개했던 시대였다. 물론 그 당시의 중국에서도 오늘과 같이 마취술이 발달되었을 턱이 없다.
화타도 인도대마를 썼다고 하지만 역시 기본은 경혈과 경락에 침을 놓아 환부를 마취시켰던 것이 틀림없다.
얼마 전에「덴마크」에서「코지크」박사는 침 마취로 무통 분만시키는데 성공했다는 외신이 있었다. 「코지크」부사는「유고」태생의「스웨덴」인으로「유럽」에서는 침 마취의 제1인자로 되어 있다. 그도 중국재래의 침구법을 익힌 사람이다.
그는 무통 분만 수술을 할 때 침 마취 7에 약물 3의 비율로 마취약을 병용했다.
또한 침을 놓을 때에도 전기 침 마취기를 쓰기도 했다. 이것으로 60내지 1백60「볼트」의 전기를 1분간에 1백80회씩 경혈에 통전시키는 방법이다.
요새는 중국에서도 침과 약물과를 아울러 쓴다. 수술을 할 때 완전히 침 마취가 되었는지 아닌지를 확인하는데는 아무래도 약물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지난 25일부터 서울에서 세계침구학술대회가 열리고 있다. 9백명에 이르는 세계의 침의학자들이 한 자리에 모인다는 것은 매우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것은 단순히 침구술만이 아니라「기」의 동방의약에 대한 서양의학의 깊은 관심이 반영된 것이라 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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