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카페] '꽃'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3면

꽃/윤후명 지음, 문학동네, 8천5백원

보통 책 뒷날개에 실린 유명인사들의 주례사는 빈말이기 십상인데, '꽃'은 그렇지 않다. 안성맞춤이다.

"꽃은 역시 문장가를 만나야 숨겨두었던 향기를 드러내고, 문장가는 꽃을 만나야 글이 더 그윽해지는 모양이다."

"10년은 계속됐을까? 그는 하루가 멀다하고 종로5가를 드나들었다. 식물을 무던히도 좋아하는 소설가라는 것은 나중에 알았다. 내가 좋아하는 일에 이런 보람이 따르나 생각하며 그의 꽃글을 들여다 본다."

시인 최승호와 서울 종로 5가의 야생화 꽃장수 이상옥의 말대로 소설'돈황의 사랑'의 작가 윤후명(사진)의 꽃 글은 일단 아름답다.

스타일이 뚜렷한 산문을 구사하는 그라서 봄.여름.가을.겨울 순으로 편집된 꽃글 역시 어느 쪽을 펼쳐도 윤후명 분위기가 살아있다. 당연히 글의 형식은 없다.

긴 글과 짧은 글 사이의 호흡도 매우 자유롭다. 학명(學名)에서 즙을 짠 민간요법, 그리고 국내외 기행과 자신의 삶까지 곁들인 꽃 이야기는 이토록 윤후명답다.

학창시절 원예반 출신이었다는 그의 꽃 이야기는 당연히 여느 식물 관찰기록과는 거리가 멀다. 그의 말로는 "삶의 원초적 뿌리"인 식물의 위대함에 경의를 나타내고 경배(敬拜)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꽃 한송이에서 우주를 본다는 것은 과장이 아니다. 이것이 내가, 우리들 사랑이 우주에 닿아야만 완성된다고 믿는 까닭이다"고 그는 '문학적으로' 표현을 한다. 아름다움에 대한 찬탄은 그 다음이란다.

어쨌거나 산수유.깽깽이꽃.미나리아재비에서 옥잠화.부레옥잠.개불알꽃에 이르는 아름다운 이름의 꽃과 윤후명 식 문학적 서술을 즐기는 재미가 솔찮을 책이 '꽃'이다.

단 그림이나 사진은 단 한점도 없다. 글맛을 보면서 꽃을 떠올리는 재미와 여백을 위한 의도적인 장치이겠다 싶다.

당연히 책에는 서정주의 '국화옆에서'등 다양한 시 작품들이 소개되는데, 숨이 턱하고 막히며 그의 소설 '돈황의 사랑'이 떠올려졌던 것은 '몽골 초원의 꽃'(1백63쪽)에서 소개되는 몽골 짧은 시 한토막이었다.

"몽골 초원의 꽃을 머리에 떠올린다. 웅대한 고향의 교향시를 듣는다. 그리고 그들의 시 한 편을 읽는다. '어린애 이빨이 희어서 좋다/노인 머리가 희어서 좋다/ 죽으면 뼈가 희어서 좋다'."

이경철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