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 지방선거 '후보 검증단' 만들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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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말이 아니제. 우리 전북 임실군 말이여. 10년 전만 해도 다른 군보다 잘살았어. 그런데 이젠 우리가 젤 못 살아. 군수들이 줄줄이 비리 때문에 낙마한 탓이여. 아니, 그런 군수를 뽑은 우리 탓이여. 직접 뽑은 군수 4명이 전부 비리로 하차했으니께.”

 임실군 토박이 이태현(68) 전 임실애향운동본부장의 넋두리다. 그 말 그대로다. 툭하면 군수가 공석이고, 있을 때도 검찰·법원에 불려다니기 바빴다. 이웃 장수군이 사과·한우를 핵심 사업으로 키워가는 사이, 임실은 손을 놓고 있어야 했다. 결국 임실군은 ‘못사는 고장’이 됐다. 2012년 기준 평균 농가 연간 소득이 임실군은 2900만원, 옆 장수군은 3400만원이다. 이 전 본부장은 “지방선거 때 투표 잘못한 업보”라고 말했다.

 임실군만이 아니다. 상당수 지방자치단체가 선거를 잘못 치러 임실군 같은 후유증을 겪었다. 오는 6·4 지방선거를 잘 치러야 하는 이유다. 민선 5기(2010~2014년)에만 선거법 위반이나 뇌물수수 등으로 인해 물러난 기초자치단체장(시장·군수·구청장)이 25명이다. 전체 기초단체장이 227명이니 대략 9명에 1명꼴이다. 이들을 다시 뽑는 데 187억원이 들었다. 정치자금법을 어겨 낙마한 이광재(49) 전 강원지사, 무상급식에 반대했다가 물러난 오세훈(53) 전 서울시장, 2012년 대선에 나가겠다며 중도 사퇴한 김두관(55) 전 경남지사 등 광역단체장과 지방의원까지 합치면 민선 5기 보선 비용은 총 772억원에 이른다. 이건 모두 지자체 부담이다. 주민들을 위해 써야 할 세금을 이만큼 날린 셈이다.

 지방선거를 잘 치러야 하는 이유는 또 있다. 지난해 교육예산을 포함한 총 지방 예산은 약 208조원. 중앙정부 예산(264조원) 못지않은 규모다. 이 돈이 얼마나 소중하게 쓰이는가가 지방선거에 달려 있다. 자칫 단체장이 치적 쌓기용 사업에 골몰하면 지자체 살림살이가 궁핍해진다. 아시안게임을 유치한 인천이 그렇다. 아시안게임 준비를 하느라 최근 5년 새 빚이 1조2000억원 늘었다. 허리띠를 바짝 졸라매야 하는 상황이다. 차선 그리기 같은 민생예산마저 부족하다. 지난해부터 주겠다던 ‘첫째 아이 출산 장려금 100만원’은 여태껏 소식이 없다.

 전북대 신기현(정치외교학) 교수는 “국회의원을 잘못 뽑으면 국민 전체가 부담을 나눠 지지만, 단체장이 잘못하면 부담이 고스란히 해당 지역 주민에게 돌아온다”며 “주민 생활에 직접 영향을 주는 지방선거가 총선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단체장을 잘 택해야 한 해 수천억원의 지역 예산이 허투루 쓰이지 않는다. 하지만 잘 뽑는 게 쉽지 않다. 유권자들 모두가 후보 면면을 제대로 파악하기는 힘들다.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 이광재(50) 사무총장은 “지자체별로 광역·기초 단체장 후보를 검증할 ‘유권자 배심원단’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연설·토론에서 거짓말을 하는지 감시하고 공약·인물 검증을 맡는 조직이다. 여론조사 표본을 만들 듯 무작위로 뽑으면 정치적 중립성을 갖출 수 있다는 설명이다. 국가가 유권자 배심원단 활동 재원과 검증 방법 교육 등을 뒷받침하고, 언론과 협력해 검증 결과를 알린다. 이 사무총장은 “배심원단 교육과 활동 지원에 돈이 들지만 단체장을 잘못 뽑음으로써 치러야 하는 각종 사회적 비용보다는 적을 것”이라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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